애들을 보내고 나서야 온갖 이성의 뿌리가 내린다. 나는 어디쯤을 표류하고 있었던걸까.
'나라는 인간은 엄마로는 맞지 않아.'
엄마로 사는 일은 시간이 지나도 왜 편안해지거나 노련해지지 않는 걸까. 첫째가 2016년생이니, 벌써 8년이 되도록 엄마로 살고 있는데도 아이가 없는 상태일 때에야 비로소 나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아이가 없을 때는 땅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내 속도에 맞추어 걸어갈 수 있었고 조절이 가능했다. 잔잔한 마음의 상태 속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나. 이 상태의 나는 그럭저럭 괜찮다. 나의 언행은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바르게 학습되어 길러졌고, 내가 지향하는 모습대로 삶을 꾸려나가고 대체로 수습 가능한 일들만 일어난다. 나를 놓지 않을 정도의 화와 슬픔이 있고, 그 작은 물결은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바닥까지 내려갈 틈이 없었고, 이게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삶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에 타 있는 느낌이다. 키는 나에게 있는데, 제대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파도는 불시에 덮친다. 아이를 키우며 마주하는 나는 바닥까지 내려간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정말 상상도 못했던 내가 있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고, 경멸해 마지않는 언행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고 또 지킬로 돌아와서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이대로는 정말이지 안 되겠다.
어젯밤을 돌아보는 일은 괴롭다. 아이가 상처 받는 것도 두렵고, 이런 나의 모습과 일상에 무뎌져 버리는 것도 무섭다. 어릴 때 싫어했던 아빠의 모습이 내가 감당 못하는 상황이 오자 나오는 것을 보며...나의 모습을 보고 은연중에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을 모습이 두렵다. 날마다 죄를 짓고 있다.
어제 그렇게 나에게 온갖 화살을 맞고 울며 잠들었는데, 아침에는 그러고도 장난스럽게 웃는 아이에게 결국은 내가 찔렸다. 남은 휴직이 얼마 없는데... 아이 손을 잡고 등교길을 함께 걸어나가며 돌아온 나는 반성에 휩싸인다.
이 표류를 마칠 수 있도록, 망망대해 같은 육아의 바다에서 지도를 마련하고 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길이 없다. 도착지를 모르는 항해였던 것이다. 그러니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틈틈이 보살펴 가면서, 항해의 순간 자체를 즐겨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생이었다... 아. 그 순간이 아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동시에 즐기고. 그냥 그렇게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것.
변하지 않을 원칙
1.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고 아이는 배워야 한다.
2.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모습이든 아이는 그럴 수 있다.
3. 화가 나더라도 최악의 행동은 절대 안 된다.
4. 지금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