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은 나에게로만

by 서이은

아이 둘을 등교, 등원시키고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종종 있다. 허둥대며 애들과 급히 인사하고 출근하던 때에 비하면, 휴직 중이라 잠시나마 이 녀석들의 하루를 시작해 줄 수 있음이 참 감사한데... 한 아이는 계속 다그쳐야 다음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수행했고, 한 아이는 계속 밥을 물고 있었고, 나는 괴물처럼 소리쳤다.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애들을 보내고 나서야 이 감정의 근원을 잠잠히 들여다 본다.


나는 모범생이었고 해야 할 일을 우선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앞두고 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그런데 타인을 시간 안에 하도록 해야 하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이 것들은 나의 일상에도 차질을 가져온다. 일차적인 이유는 그것이고 이 생활이 반복되면 깊은 우물로 들어간다. 나에게는 현실의 안정과 여기서 버텨냄이 시급하므로, 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도 꿈꾸던 나는 점점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 이 사실에 나는 조급해지고, 은연 중에 꿈꾸던 이상을 아이들에게 전가한다. 내가 꿈꾸었던 가정과 가족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고 나면 한숨이 난다. 내가 상상 속에 그리던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거든.


나는 딸 하나 키우는 우아한 여자로 나이들어 가고 있을 줄 알았다. 싱긋 웃으며 아이를 격려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행복해하고. 차를 마시며 글도 쓰고. 사랑과 여유와 행복이 음악처럼 흐르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실재하지도 않았던 이 삶이 나에게 현타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나의 아이이지만. 그냥 자신이지 않은가.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남편은 말해 무엇하랴. 원래 그런 놈이고, 원래 그런 애들이다. 나는 나의 그림이 있었지만 또 너는 너대로의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아이들은 인자하고 자상한 엄마를 꿈꾸었지, 나처럼 버럭하고 다그치는 엄마를 꿈꾸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이상 속 가족의 모습은 나의 꿈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가족은 나와 함께 순간을 공유할 뿐이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가족이지만 내가 움직이고 조정할 수는 없는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꾸만 나의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오려고 했으니, 나의 고정된 틀 안에서 사느라 너희들도 참 힘들었겠다 싶어지기도 했다. 내가 꿈꾸던 가족이라는 이상 속에 매몰되어 현재의 삶의 가치, 현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각도 이제야 든다.

나의 이상은 나에게로만 한정시키자. 대신, 꿈꾸던 내가 더 가라앉기 전에. 더 이상 일기장 속에 수그려들어가지 않고 나를 펼쳐내는 첫 걸음을 딛는다. 희망에 가득 찼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처럼 나의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며 더해진 책임의 무게가 있지만 온전히 나로서의 삶 또한 계속되므로.


이런 생각은, 아이들이 없을 때야 비로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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