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내 인생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나를 위로하고 치유했던 잠의 힘을 믿었다. 좀 이상하다, 눈이 좀 뿌옇고 피곤하네 그 정도였다. 쓰러지듯 잠이 들며 당연한 아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 날, 눈을 떠서 처음 마주한 세상은 달랐다. 눈 앞이 뿌옇게 낀 것 같기도 하고, 흐린 것 같기도 하고 시린 듯 아픈 듯한 살짝의 고통이 함께 했다. 내가 당연히 보던 세상이 아니라는 것에서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흐릿하다가 점점 글씨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하고 두려움도 슬슬 몰려왔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조금 더 있으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일상의 균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불길한 예감을 접어두고 애써 일과들을 해냈다. 월요일에는 안과를 들러야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늘 마주했던 일반적인 월요일을 시작할 줄 알았다.
그 다음 날 아침은 눈을 아예 뜰 수가 없었다. 눈이 너무 시려웠고 눈물이 줄줄 쏟아졌으며, 아파왔다. 볼 수 없는 세상은 내가 경험해 본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집에서조차 낯선 세상에 던져진 공포에 휩싸였다. 이대로 영영 보지 못하는 세상을 살게 될까봐 가장 무서웠다. 머릿 속에서는 이미 생각이 발전하여 이대로 살게 된다면 아이들을 돌봐주지도 못하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지고, 더 나아가 가족에게 점점 짐이 되어가는 내 모습까지 그려나가고 있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어쩌면 실려진 채로, 안과를 갔다. 당사자인 나에게는 순식간에 세상의 재앙이 내게만 몰아친 듯한 일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에게는 흔한 케이스였다. 그나마 다행인 거다. 왼쪽 눈은 각막 가운데가 뜯겼고, 오른 쪽 눈은 각막이 사포로 문지른 듯 손상되었다고 했다. 각막 찰과상, 각막염 등의 진단이 붙었다. 새 살이 돋는 것처럼 각막이 차올라야 하고, 일주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다시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 아프고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무기력했다. 안약 넣고 잤다 깨고, 안 연고 넣고 잤다 깨고, 인공누액 넣고 잤다 깨고. 마치 신생아 같은 생활을 했다.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눈이 먼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요일 진료. 남편의 부축을 받아 안과를 갔다. 앞이 안 보이는 나를 위한 다정한 행동들은 마음을 오묘하게 만들었다. 다정한 마음이 없는 다정함은 껍데기 같은 것이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러한 행동들은 요즘 내가 느끼던 공허함의 이유를 알려주었다. 나에게 이 사건이 닥치는 동안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가족으로서의 책임감과 도리였을까, 안쓰럽고 가련함이었을까, 그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협력일까.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수요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가득 찬 마음으로 팔짱을 걷고 입장했던 그와 나는 9년 만에 깎이고 닳아버린 마음으로 도리와 생존을 위한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이 흘러온 그와 나 사이에는 회복이란 것이 있을까 씁쓸했다. 더꺼내지 않고, 고마운 마음만 남기고 최소한의 관계로만 이어져 있는 이 사이를 다시 덮어두었다.
각막이 차오르는 이 일주일은 다시 채워지는 시간들이었다. 마음 속에 여러 가지 밴드를 붙여주었다.
밴드 하나. 나는 생각보다 잃을 것이 많았다는 것.
밴드 둘. 당연한 것은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
밴드 셋. 감사한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니 잊지 않도록 다시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올해를 마무리하기로 다짐했다. 더불어 뒷전이던 나의 건강을 의식적으로 챙기기로 했다.
그 사이 깊이 물든 가을이 발끝까지 와 있었다.
서른 여덟해의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