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오웰
고전은 다 이유가 있다.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도 지금의 시대에도, 아마 미래에도 적용이 되는 글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오로지 제목과 빅 브라더), 알지 못하고 읽을 생각을 못 했던 책을 읽게 되어 좋았다. 더구나 선거일에 1984 독서 모임을 가지는 것도 뭔가 의미 있었다.
1984를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나 독재 정권 시절이 떠올랐고, 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도 잘 포장되어 있을 뿐이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 브라더의 통제 속에서 살고 있는 1984, 지금 우리 시대 역시 통제와 감시 속에 살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다만 그 통제와 감시가 더 교묘해졌을 뿐. 정치인들의 이미지와 사회 주도 세력이 그리는 큰 그림 속에서 나는 순종적인 하나의 개체로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어쩌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구는 전체주의 사회 안에서 안전이라는 이름 속에 기대어 자각 없이 사회를 살도록 눈멀게 만드는 주문 같은 느낌이다. 자꾸만 지금 시대를 대비해보게 된다. 나는 지금도 어떤 주문에 세뇌된 채 의식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나의 사고까지도 텔레스크린에 의해 감시되고 이미 짜여진 그림 안에서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과거 역시 현재를 지배하는 자들에 의해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것. 진실은 더이상 진실이 아니고,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다 생각을 하니 무섭다. 지금 시대는 더 투명하고 개방되어있는 것 같지만, 더 무섭고 은밀하고 치밀하게 통제하고, 더 멀리까지 자연스럽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공포감이 밀려온다.
과거의 기록을 지우고 신조어를 만드는 것. 언어가 지배하는 사고의 힘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을 사용할 수 없게 했었고, 또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힘 써왔던 것이다.
시대를 보여주는 1장, 줄리아를 만나서 깨어나는 듯했던 2장을 지나, 3장은 반전이면서도 충격이었고, 또 현실이었다. 마지막 문구까지 씁쓸하면서 처참하게 끝을 맺었다. 육체와 폭력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면서, 마지막 항거의 정신마저도 결국 굴복 당했다. 그리고 그 정신과 내면의 사상까지 바꾸어 놓는 통제를 보며, 개인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정말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잘 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사람의 신념이나 이념, 사랑까지도 정말 한없이 초라하고 힘이 없다. 윈스턴은 완전히 통제당했다. 무섭다. 이 책은 사회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비판 없이 하루하루 생각 없이 살 때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 두고두고 떠올려야 할 책이다. 나의 사고가 실체 없는 무언가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