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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Jan 13. 2023

[옥토패스 트래블러] 현대에서 과거를 만들다

  최근 극장에 「아바타2」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되었습니다. TV에선 옛날에 활약했던 운동선수들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무언가를 다시 가져오는 건 옛날부터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그 기세가 점점 강해졌습니다. 무조건 싫다는 건 아닙니다. 로봇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용자물 시리즈 상품이 나오는 건 환영할 일입니다. 그리고 어릴 적 가지지 못했던 굿즈나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 세월이 지나 다시 보기 힘들어진 비주얼 등을 현대식으로 부활시키니 접근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힘든 사람도 많아졌고,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되어가는 요즘에 추억 이야기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은 것도 없습니다.


1992년도에 방영한 작품의 프라모델이 2022년에 발매됐다


  다만 게임은 살짝 다릅니다. 소비자가 직접 행동해야 하는 문화 매체다 보니 지루하거나 불편한 것을 건너뛰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애초에 했던 걸 또 하는 건 지루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만들되, 고전의 감성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해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를 성공시킨 게 [옥토패스 트래블러](이하 옥토패스)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옥토패스]가 옛날 감성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옥토패스]는 2018년도 출시




  비주얼

  앞서 말씀드렸듯 과거 흥행작을 현대로 다시 가져오는 추세가 영화나 만화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과거 2D 도트에서 3D로 바꿔 개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도트 전문 인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인디 게임 개발이 아니라 전문 개발사 취직을 고려한다면 3D 기술을 배우는 게 더욱 유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트 개발자가 갈 곳은 [던전 앤 파이터]나 [메이플 스토리], [바람의 나라 연] 등 극히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3D로 새 단장한 게임이 고전의 향수를 제대로 끌어올리는 것도 아닙니다. NPC가 짧은 팔다리로 추던 춤을 3D 그래픽으로 다시 보면 촌스럽게만 보일 뿐입니다. 음악 등도 중요하지만, 결국 비주얼도 감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겁니다.


출저 : 게임덱후들 성검전설 리메이크 리뷰


  그래서 스퀘어 에닉스는 다른 개발사와 협업하여 HD-2D 그래픽란 걸 개발했습니다. 그것은 맵을 3D로 만든 후 도트처럼 생긴 텍스쳐를 입혀서 과거의 향수를, 광원과 원근감 등으로 현대적 연출을 표현한 것이며, 이는 각 시대별 외형을 어떻게 적절히 섞어야 할지 깊게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우선 몇몇 유저들이 도트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는 부분을 일부러 드러내면, 플레이어 스스로가 그곳을 채워 넣게 해서 몰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옥토패스]에서는 유저들이 집중할만한 주인공이나 몬스터, 배경을 3D 모델링으로 만들되 도트 외형을 입혔습니다. 특히 움직이는 것들에겐 딱딱한 애니메이션, 한정된 표현, 리소스 재활용 등으로 고전 게임의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일러스트도 색이 바랜 느낌을 준다


  현대적인 연출은 감성 자극과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노을을 보고 울적해지고, 맑은 날에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HD-2D 그래픽은 조명과 원근감 등으로 환경을 표현하여 누군가의 여행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고, 적절한 음악으로 감수성을 잘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전투를 할 때 크고 화려한 이펙트와 파티클이 튀어나와 화려함을 보여주고, 타격감도 생각보다 잘 살렸습니다. 기본적으로 요즘 유저들이 원하는 비주얼이란 무엇인지 개발자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원근감과 스킬 이펙트




  스토리

  [옥토패스]가 좋은 성적을 거둔 후 개발사는 HD-2D 그래픽을 적용한 게임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분명 앞으로도 많이 나오겠지만, 그 작품들은 아마 대부분 RPG 장르일 것입니다. 저번에 [드래곤 퀘스트11 S]와 함께 JRPG가 무엇인지 다룬 적 있습니다. 그 장르의 스토리는 종교의 영향 때문인지 인간 내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과거를 파해쳐 상처를 드러내고, 이를 극복하여 성장하는 이야기가 지금도 자주 나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유저들에게 공감과 감수성을 잘 끌어올리기 때문에 HD-2D 그래픽에 잘 어울립니다. 탬포도 느리기 때문에 액션 중심의 게임과는 잘 맞지 않고, 미연시나 시뮬레이션 장르에 쓰기엔 미려한 비주얼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계가 명확한 그래픽 스타일이지만 스퀘어 에닉스는 고전 RPG 리메이크에 주로 쓸 목적인 것 같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듯


  [옥토패스]는 그 JRPG의 스토리를 잘 따라갑니다. 도입부에서 주변 인물과의 관계성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장르 특유의 규칙을 너무 답습해서 클리셰가 많고, 모든 인물의 이야기에 패턴이 잡혀있습니다. 마지막인 4장까지 진행하면 이야기가 점점 뻔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심지어 8명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진행되기에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극도로 적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위험에 빠졌을 때 같이 여행하던 동료가 구해주는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조력자는 그 인물의 시나리오에서만 등장하는 지인뿐입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군상극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실망이 클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단편 소설 8편이 실린 모음집 1권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나마 마지막에서 각 스토리의 연결점인 최종 흑막이 드러나지만 너무 늦게 등장한다




  불친절한 게임 플레이

  [옥토패스]의 전투는 턴제이며, 약점을 공략하여 상대 차례를 최대 2번씩 뺏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고전 느낌도 나지만 전략성이 좋아서 현재도 쓰이는 구성입니다. 약점 공략도 속성과 무기를 따져서 몇 번 공격하면 끝이라서 아군 구성이 중요해지는데, 이때 직업을 최대 2개씩 가져갈 수 있어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어떻게든 끌고 갈 수 있도록 게임에서 배려를 해줍니다. 이것은 [옥토패스]의 몇 없는 편의성 중 하나입니다.


직업에 따라 스킬과 무기, 어빌리티가 다르다


  사실 인물마다 강력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결국 8명 다 키워야 하는데 이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캣링이란 몬스터나 불가사의한 춤 스킬을 이용하면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서브 퀘스트도 진행하기 불편합니다. 메인 스토리의 경우 분량이 60시간 정도 나와서 그런지 가야 할 길이나 행동을 잘 알려줍니다. 이와 달리 서브 퀘스트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는 건지 경험치도 안 주고, 다음에 해야 할 행동도 넌지시 알려주기만 합니다. 한 맵에서 완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공략이 거의 필수적인 수준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레이더를 껐는데 다시 키는 방법을 까먹으면 낭패다


  이런 불편함은 고전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회상으로 떠올리면 추억 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편의성에 적응한 요즘 유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불친절함일 뿐입니다. 만약 과거 회상이나 추억을 자극하려고 했다면 그냥 고전 게임 오마주나 잔뜩 넣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메탈 슬러그] 오마주가 들어간 [마이티 구스]




  실험작?

  습작생을 살펴보면 작품을 만들 때 새로운 시도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를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도전 정신에만 심취한 나머지 문제점을 스스로도 알고 있음에도 해결할 의지를 가지지 않는 건데, [옥토패스]에서 그런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클리셰 덩어리인 스토리, 레벨 벨런스, 불편한 서브 퀘스트 등이 충분히 해결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트레사라는 인물의 스토리 도입부에는 낭만이 가득했고, 프림로제의 복수극은 뻔했지만 최종장 연출에는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습니다. 레벨 밸런스 문제도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처럼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멤버도 경험치를 소량 얻도록 하거나 아이템으로 성장시키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서브 퀘스트도 보상을 수정하고 내비게이션 기능을 추가하면 콘텐츠를 무난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는 몰라도 게임 플레이 모범 답안을 다른 게임에서 찾아도 괜찮습니다.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말입니다.


여행의 설렘이 잘 느껴졌다


  어쩌면 이 일이 스퀘어 에닉스의 지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옛날 작품을 되살리는 현 추세에서, 고전 RPG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게임 회사라면 과거의 향수와 현대의 감성을 둘 다 챙기길 원했을 겁니다. [옥토패스]가 그에 알맞은 작품이며, 결과적으로 HD-2D 그래픽이 접목된 작품 전부가 지금까지 스퀘어 에닉스에서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픽에만 신경 쓰게끔 개발진들에게 시간과 예산을 제한적으로 지급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필자의 생각일 뿐,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걸 언급하는 이유는 그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단점이 해결되지 않아서 아쉽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보완점에 고민한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2]에선 다행히 크로스 스토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추천

  [옥토패스]는 겉가지가 거의 없는 나무와 비슷합니다. 아이템 강화, 미니 게임, 낚시 등 흔한 콘텐츠도 없이 전투와 퀘스트로만 최소 60시간을 달리는 게임입니다. RPG로서의 최소한만 지키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즐기기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분들에게도 권하기 힘듭니다. 그저 옛날 감성, 혹은 도트 그래픽의 턴제 JRPG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상위 직업을 얻고 캐릭터가 충분히 키워질수록 공략하는 재미가 강해지고, 스토리는 익숙한 만큼 몰입하기도 쉽습니다. 필자도 재미있게 즐겼지만 턴제 JRPG란 장르 자체가 취향이 갈리니, 잘 선택해서 해보시길 바랍니다.


낚시는 [소닉 포시즈]에도 있다




다음 편 예고

[옥토패스]는 오로지 고전 감수성만 집중한 게임입니다. 그러나 탐색이나 질문이란 커맨드로 여러 NPC의 속사정을 알려주는 등 이상한 곳에서 디테일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게임의 재미에 큰 영향을 주진 않지만 세계 곳곳을 표현하는 건 유저에게 큰 몰입감을 줍니다. 흑사병이 도래한 세상에서 어느 남매가 음모와 고난을 극복하여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어느 작품은 세계관과 인물의 묘사에 힘을 많이 실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수천마리 쥐 떼의 끔찍함과 어린애의 철부지 행동을 유저에게 잘 어필한 게임, 다음에 다룰 작품은 [플래그 테일 : 이노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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