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밥은 함께 먹어야
2002년 월드컵 무렵이었던가 언젠가 아버지께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사회적 분열이 많은 것 같아도 적어도 남자들 사이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최소한의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모두가 평등해지는 원초적 경험을 오랜 시간 해봤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다시피 이는 군대에서 이뤄지는데, 그 평등의 경험이란 모두가 같은 곳에 앉아 같은 밥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밖에서 부유했건 가난했건 잘났건 못났건 배고픔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함께 둘러앉아 같은 음식으로 해결하는 경험이 서로 간에 동질감을 마음속에 심어준다는 아버지의 이론이었다. 반대로, 누군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은 그만큼 서로 간의 거리감을 심어줄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싱가포르에서 헬퍼를 고용하는 대부분의 가정은 식사를 따로 한다. 식사를 따로 할 뿐만 아니라 헬퍼가 먹을 음식, 고용 가족이 먹을 음식이 따로 정해져 있다. 냉장고에 들어갈 음식이라면 한 공간을 내어주고 선을 긋는 것이다. 물가 비싼 싱가포르에서 식비를 아끼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가족마다 문화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라니 이모를 우리 집으로 데려올 때, 모든 먹는 것은 함께 나눠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
헬퍼들은 대부분의 집안일을 잘하지만 각자 조금씩 더 잘하는 특기도 있다. 앞서 말한 아이비는 청소를 최고급 호텔의 룸서비스보다 잘했지만 아기를 돌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라니 이모의 청소는 아이비의 야무진 손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더욱 큰 행운이 우리에게 따랐으니 요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이튿날부터 라니 이모의 요리 실력이 드러났다. 내게 저녁으로 무엇이 먹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거나 다 좋다고 했다. 아마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가장 싫은 대답일 것이다. 집안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도 좋고, 필요한 게 있으면 슈퍼마켓에 다녀오라고 했다.
퇴근 후 그날 저녁 나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는 저녁을 맛보았다. 이모에게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니 아직 안 먹었다 그래서 음식을 떠 와 같이 먹자고 했다. 처음에 이모는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같이 둘러앉아 먹는 것도 조심스럽고 어색해했다. 아마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리라고 짐작했다. 먹을수록 감탄이 나와서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냐고 칭찬과 함께 물어봤다. 수줍게 좋아하며 말하길, 전에 있었던 집이 싱가포르에서 굉장히 부자인 대가족이었는데 그곳의 (화교) 아저씨가 이모에게 요리 선생님을 붙여주고 요리만 전담을 시켰다는 것이다. 집이 크고 사람이 많아 아마 헬퍼를 여러 명 둔 모양이었다. 나는 공짜로 그 요리 실력 덕을 보게 되었으니 행운이었다. 이후 라니 이모의 요리는 동서를 넘나들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게 나를 위해서도 현명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식탁에 함께 앉아 먹는 것은 나중에 본인이 극구 사양하고 불편해하는 듯하여 따로 먹게 되었지만.
라니 이모가 요리를 잘한다는 건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식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뒷정리를 잘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라니 이모는 항상 있는 재료가 낭비되지 않도록 냉장고 관리를 잘할 줄 알았으며, 슈퍼마켓에서도 신선한 음식들로 알뜰하게 재료를 구해왔다. 우리는 장 보는 일을 전적으로 이모에게 일임했다. 라니 이모 때문에 입이 늘어서 식비가 더 드는 게 아니라, 항상 재고를 잘 관리해 주는 덕분에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식비를 아낄 수 있었다.
산해진미 온갖 요리가 넘쳐나는 싱가포르에서 우리도 참 이것저것 많이 먹어봤지만 집에서 먹는 식사만큼 맛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꼭 일찍 퇴근하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가족에게 큰 행복이었다. 라니 이모도 어디 비스킷 쪼가리 같은 것으로 배를 채우며 부족한 영양상태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요리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마음껏 먹으면서 건강하고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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