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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Nov 23. 2019

알래스카의 겨울

여행자의 흔적은 없어지고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텐트를 걷고 떠날 준비를 했다. 내일이면 이곳 캠핑장에 남아있던 이들도 모두 떠날 것이다. 시즌의 끝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공원과 캠핑장은 문을 닫고, 다음 여름을 기다린다. 스쳐 지나간 여행자의 흔적은 없어지고 자연은 유유히 자기만의 겨울을 보낼 것이다.


  앵커리지에서 호머로, 호머에서 알래스카 산맥을 넘어 페어뱅크스로, 그리고 디날리로 이어졌던 여정은 이날 앵커리지로 돌아가면서 끝이 났다. 나는 앵커리지 시내의 한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일일 사용 등록을 하고, 샤워와 면도를 하고 나왔다. 렌터카를 반납하러 공항으로 갔다. 처음 만났을 때 깨끗했던 이 도요타 캠리는, 며칠 사이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꼬질꼬질해져 있었다.


  여행은 사실 대부분 즐겁지 않다. 편하면 편한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했던 일들에 어떤 숭고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굳이 의미부여를 하자면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거기서 발견하는 기묘하고 슬픈, 때로는 흥미로운 역사와 바다, 말코손바닥사슴, 바람, 은사시나무 내음, 이런 것들을 깊이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열심히 숨 쉬어 볼 뿐이다. 그래서 다시 내가 뿜어내는 입자들이 조금이나마 알래스카의 냄새를 풍기기를, 지구의 역사 속에서 아주 사소할 뿐인 한 인간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열심히 길을 걸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운이 좋게도 이번 여행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지만 이 마지막 문단까지 길고 이상했던 여행기를 읽어준 당신에게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은 언젠가 읽은 한 편의 시로 끝맺겠다. 이것으로 내 안에 담긴 알래스카를 내려놓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연의 풍경
네가 기차를 타고 저곳에서
또 다른 저곳으로 향하는 동안
자연은 침묵 속에서
너의 사라짐을 응시한다."

- W.G. 제발트, <Über das Land und das Wa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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