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Argyris에게 듣다
“배움은 머리로 하지 않는다. 배움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 Chris Argyris
그가 내게 처음 들려준 말은 그 문장이다. 지적 유희보다 용기 있는 관계가 먼저라고, 그는 서두부터 명료하게 선을 그었다.
Chris Argyris(1923–2013)는 하버드대학교 교육학과와 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분야를 정립하였다. Donald Schön과 함께 ‘Organizational Learning II: Theory, Method, and Practice’(1996)를 집필했고, ‘행동과 인식 사이의 간극’에 천착하며 현대 조직개발(OD)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문제를 진단하는 대신, 사람들이 문제를 ‘어떻게 회피하는지’에 집중했다. 그가 질문한 것은 늘 이것이었다. “왜 우리는 그것을 말하지 않는가?”
그는 말했다. “조직에서 가장 흔한 병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분석하고 회의하고 말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태. 나는 종종 그런 조직과 함께 일했고, 당신도 아마 그럴 것이다.
Argyris는 조직이 학습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s)’이라 명명했다. 이는 사람들이 당황스럽거나 위협적인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인관계 상호작용의 패턴이다. 예컨대 회의에서 아무도 ‘불편한 말’을 꺼내지 않는다. 결정의 오류를 알면서도 침묵한다. 그리고 커피 타임에서야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그는 이런 패턴이 ‘일방적 통제 모델(unilateral control model)’에 기반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똑똑한 사람일수록, 리더일수록 회피의 방식이 더욱 정교해진다. 우리는 배움을 거부하는 방식마저 학습하고 만다.
Argyris와의 동행은 ‘조직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기도 한다.’는데 까지의 해석으로 나아간다. 나는 잠시 그이 책을 덮는다.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고, 그 안에는 나 자신도 있었다.
AI 시대의 새로운 방어적 루틴
AI 도입이 일상으로 확산된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방어적 루틴이 생겨나고 있다. “AI가 분석했으니 맞다”, “데이터가 말하니 따르자”는 식이다. 기술이 인간의 직관과 성찰을 대신하며, 비판과 책임의 공간을 잠식한다. 우리는 다시, 사고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rgyris의 대표 개념 중 하나는 단일고리 학습(single-loop learning)과 이중고리 학습(double-loop learning)이다(Argyris & Schön, 1978). 전자는 문제를 수정하는 데 그치지만, 후자는 그 문제를 만들어낸 전제와 사고방식을 돌아본다.
회의가 비효율적일 때, 단일고리 학습은 시간 단축을 고민한다. 하지만 이중고리 학습은 “우리는 왜 회의에서 진짜 말을 하지 않는가?”를 묻는다. 이중고리 학습은 기존 규범과 가정을 구조화하고 새롭게 설계하는 탐구의 방식이다. 특히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고착된 신념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핵심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종종 방해자 취급을 받는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이중고리 학습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종종 단일고리 학습으로 귀결된다. 툴을 도입하고 자동화를 확대하는 것에 몰입한다. 하지만 조직이 진정으로 묻는 경우는 드물다.
“이 기술은 우리의 관계, 권한,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진정한 디지털 전환은 기술의 학습이 아니라, 기술로 인해 변화된 인간성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집단적 재학습이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이중고리 학습이어야만 가능하다.
Argyris는 이를 ‘Skilled Incompetence’, 즉 ‘숙련된 무능력함’이라 불렀다.
지적으로는 탁월하지만, 감정적으로 불편한 대화나 실수 인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하버드 MBA 학생들을 연구하며, 그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스마트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실수를 감추고 피드백을 회피하는 행동을 분석해주었다.
이들은 피드백을 회피하고, 자기합리화를 정교하게 구조화하고, 스스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리더가 될수록 이 무능력은 조직 전체에 전이된다.
AI 시대의 숙련된 무능력
지금의 조직들은 AI 도구를 다루는데는 익숙해졌지만, 그에 수반되는 인간관계의 변화와 정체성의 위기에는 무능력하다. 기술적 숙련도는 높아졌지만, 정서적 회복탄력성과 창의적 질문은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Argyris는 인간은 두 개의 이론을 동시에 지닌다고 했다. 하나는 ‘신봉이론(Espoused Theory)’, 즉 우리가 믿고 있다고 말하는 이론. 다른 하나는 ‘사용이론(Theory-in-Use)’, 실제 행동을 이끄는 이론이다.
조직은 종종 “실패를 허용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실패한 자를 외면한다. 리더는 “열린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비판한 직원을 조용히 배제한다. 진짜 진단은 조직의 ‘강화 메커니즘’을 보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 보상받고, 어떤 행동이 침묵당하는가.
디지털 전환에서의 괴리
많은 조직이 “인간 중심의 디지털 전환”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효율과 비용 절감에 집중하며 사람을 도구처럼 다룬다. 그 결과, 기술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커지고, 전환 자체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Argyris는 학습을 기술이 아니라 ‘관계 능력’이라고 했다. 진짜 학습은 “비난 없이 말할 수 있는 대화”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 대화를 ‘공동 탐색(mutual inquiry)’이라 불렀다. 미리 정해진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과 해석의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꼭 필요한 요소는 바로, 용기다.
그는 “조직은 기술보다 용기가 더 절실하다.” 강조해주었다.
기술의 시대, 인간성의 회복
AI와 원격근무, 자동화 시스템은 인간관계를 단절시킨다. AI 도입 이후, 조직은 직원들의 정서적 고립감과 소진 수준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리더는 직원의 감정적 필요를 직시하고, 공동체로서의 조직을 회복하는데 조금 더 마음을 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조직에서 중요한 주체로서 일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격근무가 일상화되고, AI가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사회. 우리는 기술이 아니라, 의미의 부재에 지쳐가고 있다. 사회적 연결의 약화는 개인의 성찰력과 집단의 학습력을 약화시킨다.
Argyris가 말한 ‘방어적 루틴’은 이제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는지도 모른다. 소셜미디어와 AI 알고리즘은 우리를 공론장에서 밀어내고, 안전한 정보의 버블 속에 가둔다.
이러한 시대에 조직은 의미를 제공하며 함께일하는 마지막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조직학습은 단지 효율성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하게 살아남기 위한 꺼져가는 불씨 또는 살려야할 수단이 될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