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채무자

청구서는 언제나 느닷없이 날아왔다.

by 괜찮은사람

서진은 신용카드가 없다.

빚을 진다는 느낌도 싫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드 밀어지는 청구서의 낯섬도 싫었다.


그런 그녀에게 항상 부채감을 주는 건 다름 아닌 그녀의 가족이었다. 이 부채감의 무서운 점은 빌린 적이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청구서가 날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그녀와 터울이 제법 나는 동생의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서진에게 난데없는 청구서가 발행되었다.


'언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결혼식에 온다면 난 언니를 예전처럼 대할 거야.'


모바일 청첩장 링크로 마무리된 약 1년 만의 연락. 이미 폐장된 놀이공원 앞에서 출처 모를 티켓을 내밀며 마구 입장시켜달라고 떼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지 말랄 때는 언제고.' 서진은 편두통을 느껴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출처 모를 감정 청구서보다 서진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느끼는 '부채감'이었다. 절연하다시피 지내던 가족들이 이렇게 한 번씩 청구서를 내밀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용히 동생의 문자를 옆으로 밀어 '삭제'했다. 그날 밤 서진은 이사 온 지 보름도 안된 낯선 집에서 혼자 울었다.


며칠 뒤였다.


'필요한 건 없어? 난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동생 결혼식엔 올 거지?'


어머니의 연락이었다. 서진에게 떠밀다시피 맡겨두었던 서진 명의의 어머니의 예금을 해지한 지 3일 만이었다.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입금했어요'라는 말에 '네가 부담스럽다면 그렇게 해야지'라는 말이 끝이었다. 1년 남짓, 그리고 그 이전에도 몇 년간이나 파킹 통장 역할을 해왔다. 물론 그 주차는 365일, 24시간 무료였다. 보관료는커녕 고맙다는 말도 없이 '네가 내 딸이니까' 당연히 행해져 왔던 불법주차는 그렇게 막이 내렸다. 그 청구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른 청구서가 날아올 줄이야. 서진은 두통약 대신에 문자를 써 내려갔다. '이번에 일정상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주인 없는 감정 청구서를 그만 받겠다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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