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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너희 집으로 돌아가!

준비되지 않은 봉사활동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바라나시에서 고라뿌르로 가는 기차에서 내렸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꿀잠을 자고 일어나 역 밖으로 나왔다. 회색 셔츠를 입고 있는 착한 청년 한 명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위치를 물어보았고 청년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주변 잡상인들의 호객행위를 물리치고 버스 한 대를 찾았다.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라 그런지 가격이 싸고 낡았다. 버스 안에선  찜통더위가 버스 밖은 모래먼지가 나를 맞이한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몇 번 반복하다가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잠에서 깨었다. 도착했으니 내리라고 말하는 버스기사의 손짓에 우리는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인도에서 네팔로 너머 가는 국경은 알아보기 힘들다. 비자를 받는 곳이 너무 작아서 여행객 중 한 명은 네팔의 중심부까지 갔다가  비자받으러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숨어있는 비자센터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미니버스 한 대에 충분히 가려질 만한 조그마한 구멍가게 같은 곳에 인도 비자센터가 있었다. 우리는 인도에서 출국심사를 하고 네팔로 향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인도비자센터보다는 조금 큰 네팔비자센터가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자를 받으러 들어갔다. 드문드문 동아시아인의 얼굴이 보였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나타나자 말도 통하지 않는데 괜스레 반가웠다. 네팔비자센터는 미국 달러를 받는다. 나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냈는데 거슬러 줄 돈이 없다며 조금 더 작은 돈을 요구했다. 한나라의 비자센터에 100달러를 거슬러줄 돈이 없다니, 벌써부터 재밌는 곳이다.


비자를 받고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인도 남부 도시 케랄라에서 온 인도인들을 만났다.  그중 에슐릭이라는 친구는 패션이 남다르고 멋지게 생겼다. 
케랄라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보았던 제자 도마가 선교를 간 곳이다. 431년 네스토리우스가 이단 판정을 받고 그 후예들이 동방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러 가기 전, 인도 남부의 해안가에서 예수님의 복음이 벌써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 케랄라를 꼭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는데 케랄라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나는 흥분된 상태로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케랄라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나요?"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있긴 있는데 흠......"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깊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더 이상 얘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말을 스스로 꺼내기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산들이 무성하다. 물살이 거센 강을 건너 힘차게 흐르고 태고적부터 존재해왔던 그 모습으로 거대하게 서있는 산이 위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푸르른 산은 이끼를 덮은 것 같고 저 산 어디엔가는 이전까지 만나보지 못한 그 무언가가 존재할 것 같다. 흥겨운 피리소리와 네팔어로 된 노래가 버스에서 흘러나온다. 방금 탄 사람과 이전까지 있던 아저씨가 무언가 열띤 토론을 한다. 산을 가득 덮은 나무는 왠지 푸른 마그마로 녹아내려 산에 붙어있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가 여기저기 계속 멈춰 섰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고 내렸다. 나는 분명히 이 버스가 포카라로 바로 가는 직행버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기저기 들리는 로컬버스였다. 온 동네 모든 곳을 다 찾아가는 버스였다. 버스가 느릿느릿하게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기사는 손짓으로 우리에게 모두 내리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퀴를 갈기 시작했다. 아뿔싸 바퀴가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바퀴를 고치고 버스에서 어떤 네팔리(네팔 사람)가 내게 말을 걸었다. 포카라 가는 버스에서 만난 royal anjan. 그는 벨기에에서 7년 동안 유학을 했다. 그의 직업은 컴퓨터 엔지니어. 나보다 한 살 많은 26살 형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빛이 났다. 입에서 토해내는 무언가가 하나하나 진실되고 소중한 것들이었다. 술을 좀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워서 그런지 흥분된 상태에서  끊임없는 말 때문에 자동차 멀미를 더욱 가중시키기도 했지만 좋은 친구이다.


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치노?" 나는 대답했다. "놉"

그가 다시 말했다. "자뽄?" 나는 대답했다. "놉"

그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꼬레~!" 나는 대답했다. "옙"

그는 일본 사람과 중국 사람은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 사람, 러시아 사람, 프랑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존심이 강한 건지 영어를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다. 


얘기를 하던 도중에 그는 내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어보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네팔에서 한국인 친구를 도와준 적이 있는데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인 친구를 데리고 네팔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한국 친구가 기독교인이었고 자신에게 신앙을 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는 내게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고 내게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힌두교도인 그는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모두를 존중한다고 했다. 모든 것은 한 길로 통한다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카스트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카스트제도가 힌두교 정신에 완전히 위배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카스트제도로 따지면 기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상위 계층이었고 그의 친구는 수드라, 최하위 계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베스트 프렌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 힌두교에서 말하는 카스트제도는 원래 힌두 정신에 완전히 위배된 것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여행을 여기 왜 왔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봉사활동을 위해 왔다고 말하니까 친구 얼굴이 표정이 갑자기 심각하게 변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그동안 지진 이후에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왔지만, 그들은 우리들이 슬퍼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체 자신들이 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에게 접근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네팔 사람들이 그 점에 있어서 굉장히  아쉬워하고 때로는 분노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네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이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여기 오면 여행자 커뮤니티나 NGO 단체에 소속되어 봉사하려고 무계획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태양은 뉘엿뉘엿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어두워진 버스 안에서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준비하고 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지진을 겪고 집을 잃었다. 내가 살고 있던 집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종교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도와주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것이 자신들은 굉장히 불쾌하다. 우린 지금 이대로가 굉장히 행복한데 우리를 동정하는 듯한 그 모습이 우리는 불쾌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정의 차원의 도움은 필요 없다. 그것은 굉장히 가치 없는 일이다. 정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들의 질서를 파괴하지 말고 네팔 정부기관과 연결해서 진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다시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면 너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내게 찾아왔다. 준비 없는 봉사는 그들에게 도리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봉사는 내가 기쁘고자 하는 일이기 전에 남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간과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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