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준 Mar 31. 2016

안식일에 도착한 이스라엘

거리가 온통 검은색 천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보안관이 내게 와서 취조를 했다. "너 어디서 왔어? 왜 왔어? 와서 무슨 일 할 거야? 범죄 경력 같은 거 있어? 여기서 나쁜 짓 할 거야?" 비행기에서 막 내린 나는 귀도 먹먹하고 잠에서 덜 깬 상태라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보안관은 나를 범죄자 취급하며 몰아붙였다. 나는 보안관에게 무례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보안관은 내게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이곳에 여행을 왔다. 당신이 내게 이렇게 근거 없이 몰아붙일 수 있는 자격은 없으며 더 이상 무례하게 행동하면 정식으로 대사관을 통해 항의하겠다."(사실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진 못했다. 나도 갑자기 당해서 흥분 한터라 이렇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보안관이기 때문에 이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라고 말하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당신하고 말이 안 통하니 다른 보안관 데려오던가 태도를 정중하게  바꿔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보안관은 궁시렁거리면서 다른 사람을 데려왔다. 새로운 보안관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국가 보안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지난 이스라엘 여행 때  입국하는데 나만 혼자 일행 중에 입국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며칠 있을 거야"(how many  days?)라는 말에 내가 days를 theys라고 착각해서 우리 일행 숫자를 말했다. 입국심사관은 내게 뒤로 물러서서 다른 검사를 받으라고 말했다. 나 때문에 약 40명이 기다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하는데 내가 선 줄 앞에 사람들이 한 사람당 10분-15분이 소요가 되는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이대로 정면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옆줄에 설 것인가.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정면돌파를 하기로 결심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섰는데, 입국심사관이 숙소 어디에 정했냐고 물어본다. 근데 난 숙소를 안정했다. 큰일 났다. 첫 질문부터 막혔다. 근데 문득 생각이 났다.  "아비야라는 친구가 예루살렘에 사는데 그 친구 집에서 머물 거야. 그 친구가 동아시아학을 전공해서 한국에서 사귀게 되었거든" 입국 심사관은 바로 도장을 찍어주었고 나는 드디어 이스라엘로 들어가게 되었다.  

텔아비브에서 노란색 택시를 탔다. 안식일이기에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황량한 벌판이 보였다. 이스라엘스러운 꽃들과 나무, 벌판이 내게 이스라엘에 왔다는 것을 조금 실감 나게 해주었다. 이스라엘에는 계획이 없이 왔다. 무계획 여행이다. 이스라엘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막막한  심정뿐이다. 드문드문 읽히는 히브리어가 반갑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읽는데 오래 걸린다. 발음은 읽을 수 있지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답답하다.


처음부터 당해서 그런지 한국인을 못 만나서 그런지 마음 맞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런지 외롭다. 스페인쯤 가면 더 외롭겠지. 무엇이 있을까 기대되는 마음도 있지만 이젠 두려움보단 외로움이 앞선다. 여행이야 뭐 하다 보면 다 되는 거겠지. 한인교회에 가서 한국 사람들을 좀 만나봐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어야지.


검은색 옷, 넓고 높은 검은색  털모자, 흰색 스타킹, 말끔한 구두, 덥수룩하게 긴 수염, 정갈하게 땋은 구레나룻, 엉덩이 밑으로 내려온 주렁주렁한 끈들, 이마 위에 하고 있는 검은색 상자. 자신감과 소속감에 가득 차 있는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여자. 혹은 뚱뚱한 여자.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거리가 온통 검은색 천지이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한 방향이 아니라 매우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서쪽 벽을 향해 숙소에서 약 40분을 걸었을까. 익숙한 모습의 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군인의 모습도 보인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군인들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군들도 남자  못지않게 많이 보인다. 나라를 지키는데 남자와 여자가 구분되지 않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곳이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솔로몬이 지은 성벽이 바벨론의 네브카드네자르라는 왕에게 파괴되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하고 춤추고 노래한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지 않고 서쪽 벽이라고 불린다. 사람들은 주로 무리 지어 다닌다. 아쉽게도 내가 낄 틈은 없다. 한 아저씨가 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광장에 서있다. 사람들이 국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아저씨는 매우 자랑스러운 듯 깃발을 펄럭이며 계속해서 서있다.

서쪽 벽에서 만난 라니 아저씨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너무 많은 한국 관광객을 봐서 내가 신기하지도 않은가 보다. 이 글을 적는 순간 그 깃발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건다. 깃발 아저씨의 이름은 '라니' 라니 아저씨는 캘리포니아에서 25년 동안 살다 오셨다. 국기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내 옆에 앉아서 말을 건다. 갤럭시와 삼성에 대해 얘기한다. 삼성이 자국 내에 더 비싸게 판다고 하니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물어본다. 또 내가 미국에서 직접 구매해서 해외배송을 하면 세금으로 제한을 한다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국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미친 짓이라고 한다.


나는 아저씨에게 대학교 히브리어 수업시간에 배운 쉐마 이스라엘과 바룩 아타 아도나이를 노래로  들려주었다שמה עשר אל יהוה 아저씨가 반갑다는 듯이 듣고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날이 건조해서 그런지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게 쌀쌀하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집으로 간다. 거리를 걷다 보니 예전 성지순례를 왔을 때 잠깐 내려서 구경했던 거리가 보인다. 이상하게 별거 없는 이 골목을 거니는 꿈을 많이 꿨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내일 아침은 한인교회에 가야겠다. 기대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이 끝나면 난 또 보잘 것 없어지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