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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그들은 왜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인간으로서의 죽음 마사다

강렬한 태양, 펼쳐진 광야,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남을까. 죽음의 위협을 뚫고 고민하던 쿰란 사람들이 결국 도착한 곳. 마사다.

말로만 그 비장함과 각오를 알기가 힘들어서 직접 왔다. 아직까지도 그것을 표현하기 힘들다. 일단은 걸어서 올라가 봐야겠다. 걸어서 올라가려면 '스네이크  로드'라는 곳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다. 그런데 얼마 전 낮에 스네이크 로드를 걷다가 관광객 한 명이 더위로 사망하는 바람에 새벽 4시쯤에 해가 뜰 때만 마사다를 걸어 올라갈 수 있게 됐다.

인포메이션에 있는 아줌마한테 "마사다 걸어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물어보니까. "닫았어. 내일 아침에만 갈 수  있어"라고 한다. 그래서 "내일 아침 몇 시에 갈 수  있어요?"라고 하니까 "4시에서  5시쯤에 해가  뜨겠지"라고 말한다. "캠핑이  가능해요?"라고 물어보니까 "캠핑은 안된다"고 한다. 낮에 마사다를 걸어서 올라가고 밤에 캠핑하고 내려오는 코스를 짜려고 했는데 이게 뭐람. 망했다. 버스 시간표를 물어보니까 "저기 쓰여있으니까 알아서  읽어."라고 대답한다. 아줌마한테 "여기서 쿰란 가는 버스를 아세요?" 하고 물어보니까 "예루살렘 가서  물어봐."라고 대답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방금 왔어요"고 하니까 "그럼 나도 몰라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인포메이션 앞에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니까 "여기 서 있지 마"라고 한다. 내가 "왜 여기 서있으면  안 돼요?" 하니까 여기는 자기 공간이란다. 이런 빌어먹을 마사다 아줌마. 나보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꺼지란다. 뭐 이런 불친절함이 다 있을까. 자세히 보니 불에 탄 토마토 같이 생겼다.


버스가 왔길래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마다 쿰란 가는 버스가  있어!라고 대답했다. 오 할렐루야.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다. 마사다에 갔다가 쿰란을 가야겠다.

마사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영상 하나를 보고 케이블카를 탄다. 마사다는 기원 후 66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쿰란 사람들이 도망쳐온 장소이다. 이곳은 헤롯 대왕이 기존에 만들어놓은 천연의 요새이자 사막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지형 때문에 누구도  침략할 수 없다. 우리는 요세푸스의 저작에 의해서만 이 장면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데 로마 장군들은 마사다를 침공하기 위해 자식들을 투석기로 날려서 보냈고 마사다에서는 집단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영상에서 해설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에서 패배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뜻대로 우리의 영혼까지 뺏어가지 못한 로마에게 승리했다."


마사다에 올라오자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시설들이 보인다. 아직 물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포도주는 바닥이 뾰족한 항아리를 흙벽 안에 넣어놓고 나무 천장으로 막아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한 포도주를 만들어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헤롯 대왕이 이미 이곳에서 휴양을 즐길 만큼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기에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돌산 위에서 물을 어떻게 조달했을까 궁금해서 봤더니 저기 깊은 구덩이가 있다. 비가 왔을 때 그 빗물을 받아놨다가 그것을 식수 및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실제로 그 옆에 보면 물을 쏟아부었을 때 연결된 파이프 때문에 온 마사다에 떨어진 빗물이 깊은 구덩이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로마 장군이 마사다를 침략하기 위해서 흙벽을 쌓은 모습이 보인다. 중구난방으로 쌓은 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길을 만들어서 벽을 쌓았다. 마사다의 언덕만큼 높지는 않지만 충분히 마사다의 입구를 침략할 수 있는 정도의 높이로 쌓여있다. 벽을 쌓는데 왜 벽을 못 쌓도록 방해하지 못했을까? 등 뒤에서 바람이 벽 쪽으로 분다. 화살을 쏜다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이다.

로마인들이 잔인한 것은 저 벽을 쌓을 때 유대인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동족들을 죽일 수 없었기에 로마인들이 쳐들어오기 위해 쌓는 벽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친척, 가족들이 벽을 쌓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공격할 수 있겠는가. 벽들을 자세히 보니 우뚝 솟은 마사다와는 다르게 평지에서부터 층층이 쌓여있다. 한층 한층 쌓을 때마다 죽음이 자신을 향해 다가올 것을 느끼는 마사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람의 잔인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마사다를 둘러보니 다른 방향에서도 충분히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옆에 있는 다른 마사다와 같이 생긴 돌산에서부터 다리를 놓으면 더욱 수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군인들은 자신들의 무기들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흙벽을 쌓았다. 다리를 놓았다길래 나는 사다리 같은 것을 놓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이 나있는 흙벽 정도이다. '연결된 언덕' 정도의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로마 군인들은 연결된 언덕을 통해 너무도 쉽게 들어왔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로마 장군들은 성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본 것은 싸늘한 시체더미였다. 마사다에 있던 사람들은 자살을 하는 것은 토라(유대경전)에 안된다고 적혀있었기에 제비를  뽑아한 명씩 정해지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방법을 택했고, 로마 군인들이 도착했을 때는  어린아이 몇 명 외에는 모두 죽어있는 상황이었다.

로마 군인들은 시체더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풍성한 물과 와인, 곡식과 가축 등의 생활기반 시스템이었다. 마사다는 단순히 튀어나온 돌산이 아니었다. 돌산 위에서 계속해서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역사의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계속해서 전력으로 항쟁했으면 로마 군인들은 마사다를 함락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비인간으로서 살아남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죽는 길을 택했다. 어쩌면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남아서 폐쇄된 공간 안에서 죄책감을 이겨보려  더욱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죽어가느니 차라리 인간으로 죽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서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의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닐까.

한적한 곳에 와서 예루살렘 시내에서  사 온 피타(빵)를 먹었다. 뜨거운 바람에 익어버린 얼굴을 식히며 광야를 바라보는데 예전에 한 가이드가 얘기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훈련을 모두 마친 후에 마지막 행군을 이곳에서 합니다. 과거의 치욕을 잊지 말고 지금 위의 모습을 가다듬자는 의미에서이죠. 그리고 행군 마지막에 그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Remember Masada!"

과거를 기억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만큼 강한 민족은 없다. 전쟁이 나면 앞다퉈 자신의 나라로 돌아온다는 이스라엘의 강함은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 같다.


마사다에서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외국인들이 보인다. 다들 어디로 가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들은 근처에 해변으로 놀러 간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가? 우리랑 같이 갈래?" 나는 대답했다. "나는 쿰란으로 가. 거기에 아주 소중한 것이 있거든" 그들은 이 날씨에 가면 정말 힘들 것이라고 내게 얘기했지만 힘든 만큼 값진 배움이 있을 것 같아서 도전하기로 했다. 2천 년 전, 죽음을 무릅쓰고 가장 소중했던 것을 들고 히브리인들이 도망쳤던 곳, 쿰란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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