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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쿰란에서의 노숙

걸음을 멈춰 서고 펼쳐진 광야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마사다에서 내려와 쿰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더위를 먹어서일까 몸도 축 늘어졌다. 태양이 점점 강해져 정말 나중에는 태양이 무서울 정도가 되었다. 광야에서 태양은 두려운 존재이다.

시원한 에어컨을 만끽하며 버스 안에서 조금 졸았다. 졸면서 드는 생각은 이대로 그냥 예루살렘 숙소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었다. 마사다 트래킹도 안되고 캠핑도 안되고 쿰란에 왔다가 다시 마사다로 가서 아침 트래킹을 하자니 버스시간을 모르겠고 해서 그냥 숙소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해보니 여기 온 목적은 휴양이 아니었다. 분명 나는 쿰란 사람들이 느꼈던 그 무언가를 현장에서 느끼고자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쿰란에서 미련 없이 내렸다.

내리고 3초 만에 후회했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특히나 태양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거기다가 나는 쿰란 박물관을 오려고 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쿰란 국립공원이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이런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조금 더 걷다 보니 쿰란 유적이 나왔다. 알고 보니 쿰란 국립공원 안에 쿰란 박물관이 있었다. 전에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여기가 국립공원 안에 있는 유적지라는 것을 몰랐었다. 선글라스가 너무 뜨거워져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속눈썹을 지나 눈동자로 들어가던 찰나에 에어컨이 틀려져 있는 마켓이 눈에 띄었다. 나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막의 여행자처럼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마켓에 들어갔는데 웬 아줌마가 사해 제품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핸드크림이나 풋크림 안 필요해? "이 아줌마가 지금 내 몰골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할 힘도 없었다. 그냥 에어컨에 땀을 말리고 쿰란 유적지로 향했다.

쿰란 공동체는 할라카 공동체라고도 불린다. 할라카의 뜻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제사장 직을 맡고 있던 사독 사람들이었는데 하스모니안 왕조 때 하스모니안 사람들이 제사장직과 정치를 겸해서 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여 떨어져 나온 무리들이다.

쿰란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쓴 성경 사본 때문이다. 흔히 맛소라 텍스트라고 불리는 이 사본은 그동안 우리가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칭하고 번역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본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규칙적인 일과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필사였다. 비로소 지금까지 나온 성경 사본 중에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성경의 원본은 없다.)

맛소라 텍스트는 이 지역명을 딴 것이다. 어느 날 한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다가 해가 저물어 머물 곳이 필요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늑대나 맹수가 있을지 몰라 동굴 안으로 먼저 돌멩이를 던져보았다고 한다. 근데 돌멩이를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소년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니 동굴 안에는 두루마리가 담긴 항아리가 있었고 바로 이것이 맛소라 사본인 것이 나중에서야 밝혀졌다.

근데 여기 와서 직접 보니까 꾸며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양들을 데리고 이 높은 바위산까지 올라오는 것도 그렇고 다른 동굴에서 충분히 잘 수 있는데 굳이 저렇게 떨어져 있고 높이 있는 동굴에서 자려고 했다는 얘기 자체가 조금 이상하다. 나는 그 동굴 안에서 캠핑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길래 옆에 있는 동굴에 왔다. 정확히 말하면 큰 바위들로 둘러싸여 있는 암석지대에 와있다. 개미들이 조금 많다는 것 외에는 잘 만한 곳이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봤는데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도 한참이나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며 한국에서 가져온 건빵과 피타(빵)를 물과 함께 먹었다. 너무 더운 나머지 벌컥벌컥 마시는 바람에 2리터짜리  얼음물이 미지근한 500ml 물로 변해있었다. 가져온 초코바는 이미 액체상태가 돼버린 탓에 밤이 되어 다시 굳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쿰란 사람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쫓겨 마사다로 도망을 칠 때 가져갔던 것은 성경 사본이었다. 미쳐 가지가지 못한 것을 여기에 숨겨놓긴 했지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선순위 0순위는 성경이었다. 그들은 그 무거운 성경 두루마리를 들고 4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성경은 지금처럼 흔하고 싼 존재가 아니었다. 성경 필사본은 일일이 손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경 필사본이 비싸다는 이유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아무리 비싸도 죽기 이전에 챙겨할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큰 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성경을 사랑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성경필사와 노동이었다. 철저한 반복과 집중의 값진 결과가 바로 그들의 성경이었다. 밤낮으로 성경과 씨름하고 고민하며 번역한 그들의 성경을 어떻게 죽음 앞에 내팽게치고 가버릴 수 있겠는가.

제사장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스모니안  왕조로부터 떨어져 나온 쿰란 공동체. 그들은 이처럼 성경을 사랑했다. 제사장이 되고자 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성경을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고 챙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어느새 하늘을 보니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인기척이 난 곳을 향해 뒤돌아보았는데, 그냥 이곳에 사는 귀여운 들짐승이었다. 스르륵 사라진 그 동물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길 바라며 나는 쿰란의 해질녘을 감상했다.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섞이다가 텅! 하고 머릿속이 비어버렸다. 순간 내게 찾아온 것은 무료함. 무료함을 채우는 훈련이 덜 되어있는터라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사다에서 탔던 케이블카도 그렇고 남산타워에 있는 케이블카도 그렇고 돈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타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치를 만드는 것은 그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루살렘에 있는 아브라함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려면 하루에 3만 원 가까운 돈이 들지만 여기 동굴 바위 언덕에서 자는 것은 무료이다. 언젠가 여기 동굴 바위 언덕에도 새로운 컨텐츠가 개발될 텐데 내가 그것을 해볼 수는 없을까.


 밤이 되고 어두워지자 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비춘다. 한 두개 밖에 안보이던 별들이 어느덧 수십 개가 되어 밤하늘에 빛난다. 로마 군인들에게 쫓기는 쿰란 사람들도 이 하늘을 봤을 것이다. 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방박사 또한 이 별들을 보며 예수님께 갔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쿰란 두루마리를 발견한 베두윈 목동도 이 하늘을 보았을 것이다. 목동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인지 감정이입을 하는데 뭔가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남의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내 생각을 해보았다.

2010년 시내산에서

5년 전 시내산에서 봤던 이 하늘, 그때보다는 조금 덜 빛나는 이 하늘.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도 막연하지 않았나. 막연한 하늘을 바라보며 불투명한 나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나. 마치 저 어두운 하늘에 떠있는 별들처럼 말이다. 별들은 별이고 나는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계속 생각한다.

계속 앉아 누워 생각하자니 아브라함 호스텔에 있는 것 같다. 아 참 여기는 쿰란이니 쿰란 호스텔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숙소 주인이 된 느낌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구호품이 떨어지는 상상도 한다. 헬기가 나를 발견하고 구호품을 던지는 것이다. 바람은 생각보다 춥지 않고 오히려 조금 덥다. 바위 산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가 보다.

쿰란에서 노숙을 하면서 생각보다 낭만적이거나 큰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쿰란에서의 노숙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냥 성지순례 패키지가 몸도 덜 고생하고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아까 밤에 잠에서 깨보니 별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 두 발에는 들풀 씨앗이 간질간질하게 껴있었다. 다시 자고 일어나 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밤에 하나둘씩 켜졌던 건물의 불들이 다시 하나둘씩 꺼진다. 해가 뜨는 갈릴리 호수가 고즈넉하다.

바위가 뾰족뾰족하다. 그래서 바위 위에 앉으면 아프다. 말씀은 이 바위와 같다. 내게 찔림이 있어서 자꾸 일어나게 되고 내게 아픔이 있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아 나는 뭔가를 왜 이리 기록하려 하는가. 떠오르지도 않는 영감 멱살 잡고 흔든다고 뭐가 나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뭔가를 써내야겠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나를 짓누른다. 저기 서있는 바위처럼.

그냥 단순히 생각해보자. '캠핑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무슨 조각을 발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고대 히브리어가 쓰여있다. 와! 이걸 누구한테 갔다 줘야 할까. 이스라엘 정부에  갖다 주면 시민권과 보상을 주려나. 아니 오히려 국립공원에서 무허가 캠핑을 했다고 잡아갈 수도 있겠다. 그러면 국제 망신을 당하겠지. 그럼 내가 그냥 가져가서 묻어놓았다가 다시 가지러 올까? 아니야 그랬다간 누군가가 가져가고 말 꺼야. 학교 교수님께 연락을 해야겠다. 데이터 로밍을 해서 사진을 일단 보내봐야지. 정말 귀한 자료라면 교수님 반응이 오고 이쪽으로 비행기 타고 올 수도 있겠지? 에이 그랬다가 뒤통수 맞으면 어떡하지? 그래 사람은 믿을게 못돼. 근데 그러면 어떻게 하지......'

항아리에 담긴 두루마리를 발견하고 베두윈 목동은 이런 고민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보물을 찾은 마음은 그런 것이다.


신약성서에 있는 마태복음 13장 44절이 떠오른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는 천국은 저렇게 귀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만 들었다. 근데 막상 비슷한 상황을 상상해보니 내 욕심이 앞섰다. 정확히 말하면 '내 것을 챙기려고 하는 이기심' 이었다. 썩 좋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만큼 조급하고 흥분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었을까. 확실히 모든 것을 팔아 이곳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다.

특히나 처음교회가 생겨졌을 때는 이러한 마음이 더 심했을 것이다. 같은 유대인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음의 위협과 생활화된 눈치, 축져진 어깨가 그들에게 있어서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천국'을 발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가능했다.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팔아서 천국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처음교회 사람들이었다. 처음교회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 그들의 순수했던 열정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존경한다.

국립공원에서 나오다가 보니 저기 어디에 길이 놓여있다. 나는 여기 길이 있는지도 모르고 언덕과 풀숲을  지나왔는데 여기 이렇게 깔끔한 길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가는 길도 그렇하지 않을까. 무의미한 개고생으로 누군가가 이미 닦아놓은 길 근처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시간낭비 돈 낭비 열정 낭비 낭비 투성이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정말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나는 예전 것을 리메이킹 해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소개할 만큼의 능력이 없다. 힘이 빠진다.

걸음을 멈춰 서고 펼쳐진 광야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광야는 원망스러울 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위로해줄 만한 것이 나타나기를 바랐는데. 그러던 순간 예수님 또한 이 광야에서 서서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야는 내 삶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펼쳐져있었다. 있는 태양빛을 그대로 다 맞아서 벌거숭이가 된 마음. 오랜 갈증으로 쩍쩍 갈라진 땅. 듬성듬성 멋대로 나있는 질긴 들풀.


어젯밤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느꼈던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다시 몰려왔다. 어두움 보다 막막한 것은 원망스러울 만큼 아무것도 없는 밝음이었다. 해가 뜨면 무언가 생각날 줄 알았는데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내  마음속에 몰려왔다.

길을 걷다 보니 ahava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하바는 '사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다. 쿰란 박물관 안에 있는 화장품 가게 이름이었다. 화장품 가게 이름이 왜 이렇게 예쁠까. 내게 사랑이 찾아오려나.

터벅터벅 걷다 보니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란색 버스정류장이 저기 보인다. 펼쳐진 도로도 보인다. 그 위로 새빨간 태양이 보이더니 이내 노오란 색으로 바뀐다. 다시 덥기 시작하더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입구에 서서 버스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 예루살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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