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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무계획이 계획보다 나은 하루

성 마가 수도원에서 만난 시몬 신부님

오늘은 좀 쉬고 싶다. 예수님이  시험당하셨다는 시험산을 가서 금식도 하고 노숙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컨디션 조절 못하고 아플 것 같아서 그냥 오늘은 조금 쉬기로 했다. 쉬엄쉬엄 시리아 정교회나 가볼까나. 울퉁불퉁한 골목을 지나 어딘가 숨겨져 있는듯한 곳에 위치한 시리아 정교회에 도착했다.

시리아 정교회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제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졌을 때 사도들의 첫 교회 중에 하나이다.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하셨고 시리아 정교회 또한 예수님이 사용하시던 아람어의 방언인 시리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숙소에서 걸어서 도착한 곳은 성 마가 수도원이라는 곳이다. 마가가 세운 교회라는 자부심이 아주 강한 곳이다. 이곳은 수도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쿰란에서 발견된 마소라 사본이 처음으로 옮겨진 곳이 바로 이곳 성 마가 수도원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사무엘 대주교는 이 마소라 사본을 들고 미국에 광고를 낸다. '누가 이 성경 좀 사가세요!'

미국 맨해튼에도 광고를 해보고 여기저기 광고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헛수고. 사진만 찍겠다고 찾아온 기자들까지 거부하고 사무엘 대주교는 결국 월스트리트 신문에 광고까지 낸다. 두루마리가 발견된지 7년이 지난 후에야 유대인 학자 이가일 야딘이라는 사람이 두루마리 3개를 25만 달러(2억 5천만 원)에 사게 되었다. 사무엘 대주교는 성경을 팔아 잘 먹고 잘 산 나쁜 사람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사무엘 대주교가 죽었을 때 10만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 조문객들의 대부분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 가난한 사람, 어려운 처지에 쳐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성경을 팔아 번 25만 달러는 교회의 재건과 사회의 불우이웃에게 모두 돌아갔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성 마가 수도원에 가보니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나는 그저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아줌마 한 명이 들어온다. 나는 아줌마에게 물었다. "저기... 저 여기 구경 왔는데요.." 아줌마가 말했다. "아 1분만 기다려" 1분 있다가  검은색 두건을 쓴 다른 아줌마가 나왔다. 그 아줌마는 내게 시리아 교회를 소개하여주었다. 근데 아줌마가 매우 불친절하고 강압적이었다. 아마 수많은 관광객으로부터 역사 깊은 수도원을 지키기 위한 태도였을 것이다. 아줌마는 내게 자신이 겪은 기적을 들려주었다. 사실 별로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 해야 될 얘기 사이에 안 해도 될 얘기를 끼어넣어서 굉장히 긴 얘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들을 수도 안들을 수도 없다. 뭐 난 이런 것에 이미 훈련이 됐기 때문에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들었다.

아줌마의 이름은 '요스티나' 요스티나 아줌마는 ISIS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다. ISIS에게 가족을 잃고 시리아 정교회를 통해 이곳 수도원으로 왔다고 했다. 아줌마는 주머니에 계란 한판을  사 먹을 수 있는 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계란 한판을 당장  사 먹고 싶지만 그렇게 한 알씩  사 먹으면 30일 후에는 나는 굶어 죽게 될 거였어. 그래서 나는 그 모든 돈을 갖고 하나님한테 기도했지. 하나님 숫자 6개만 알려주세요!" 아줌마는 90번이 넘게 복권을 샀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도 당첨은 안됐다고 내게 털어놨다. 그러고 나서 이 수도원으로 와서 지내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줌마가 잠에 들었는데 분명히 문을 잠가놨는데 잠에서 깨보니 문이 열려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문을 잠가놨는데 다시 문이 열려있었다고 했다. 무엇인가 신비한 기운에 느껴져서 아줌마는 지금도 교회 문을 닫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내게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프로테스탄트라고 했다. 내게 정확한 교파가 뭔지 물어보다가 감리교를 잘 모르는 아줌마는 내게 물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어?" 나는 대답했다. "네 믿어요." 아줌마가 말했다. "그럼 됐지 뭐 우린  형제자매야."

나는 시리아 교회 찬송가를 사고 싶었다. 그래서 시리아 교회 찬송가를 좀 사고 싶다고 했더니 뒤적뒤적 거리다가 결국엔 못 찾고 3시간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3시간 뒤에 다시 교회로 가니 아주머니가 책이 없다고 했다. "근데 안에 지금 기도 중인 신부님이 책을 갖고 있으니 그거라도 복사해가고 싶으면  복사해가라"라고 말했다.

그게 어디인가. 나는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검은색 수사 복장을 한 할아버지 한분이 기도를 마치고 예배당에서 나왔다. 신부님의 이름은 시몬 피터였다. 내게 시몬 신부님이 다가와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신부님에게 내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저는 학교에서 구약성경과 시리아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이곳에 흥미가 생겨서 오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나를 굉장히 반가워하며 물었다. "시리아어를 할 줄 알아?" 겨우 2학기의 수업을 들은 터라 사실 거의 할 줄 몰랐는데 그래도 뭔가 대화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조금 배웠다고 대답했다. 신부님은 내게 테이블로 초대를 했고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했다. 얼마 안 있어 독일에서 온 친구 두 명과 미국에서 온 아저씨 한 명이 같이 들어왔다. 독일에서 온 친구 두 명 중 한명의 아버지가 이곳 성 마가 수도원에서 수사 생활을 오랫동안 한 경험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이 수도원에 왔다고 했다. 그들은 기부금을 내고 그곳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신부님은 내게 시리아어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이걸 읽을 수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헐 사실 나는 시리아어 잘 모르는데 큰일 났다.'라고 생각한 나는 침착한 마음으로 그 종이를 보았다. 근데 그 종이에는 주기도문이 적혀있었다. 사실 시리아어 공부하면서 기억나는 게 몇 개 안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주기도문이었다. 나는 신부님께 시리아어 주기도문 노래를 불러드렸다. 신부님 옆에 있던 시리아 교인이 중간중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 이렇게 사용되다니 할렐루야! 신부님은 나를 무척이나 아끼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더니 나를 쓰다듬어주셨다. 동양인이 시리아어를 하니까 신기하셨나 보다. 신부님은 내게 시리아어 문법책과 예배 순서지를 보여주시면서 이걸로 시리아어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근데 문법책은 학교에서 교수님께 받은 게 있기 때문에 일단 예배 순서지만 받았다. 신부님은 거기에 있던 일행들에게 예수 성묘교회에 가지 않겠냐고 권유를 해서 성묘교회에 가게 되었다.

왠지 정교회 신부님과 함께 다니니까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신부님께 모두 인사했고 신부님들 또한 신부님께 인사했다. 신부님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기념교회를 모두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신부님과 헤어질 때 신부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꼭 시리아어를 계속 공부하길 부탁하네. 고맙네" 아 시리아어 재미도 없고 너무 어려워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고민이 된다. 돌아가는 밤거리, 거리에서는 폭죽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라마단이 끝나는 기념으로 터뜨리는 것이란다. 사람들이 평소보다 우글우글하다.

무계획 여행은 이런 게 좋다. 우연한 만남을 통한 기대치 못한 상황들. 듣다 보면 지루하고 피곤해서 상대하기 싫은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도 그냥 그저 그렇게 시간에 순응하다 보면 모든 것이 내 계획 따위보다 훨씬 재밌고 신기하게 돌아가는 것이 참 좋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와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가 평소보다 더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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