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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14. 2016

그랜디한 그랜드캐년

초현실적인 그 곳

새벽까지 카지노를 했다. 100만 달러를 목표로 카지노를 시작했는데 10달러 손해보고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늦게 자서 그런지 우리는 늦게 일어났다. 그랜드 캐년을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잠은 깼지만 아직 침대가 너무 좋은 우리는 그냥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야 우리 오늘 그냥 숙소에서 쉴까?" 내 몸은 동의를 했지만 머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랜드캐년 가려고 어제 렌터카까지 빌렸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는 무거운 몸과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호텔 안에 있는 풀장이 보였다. 내일 아침에는 수영장에서 수영이나 해야지.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렌터카를 타고 그랜드캐년으로 출발했다. 차가 쾌적하고 좋았다. 드라이버가 운전병 출신이라 그런지 운전 또한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아침을 못 먹은 우리는 가는 길에 맥도널드 트뜨루 드라이브를 시켜먹었다. 친구 둘은 맥머핀을 먹고 나는 핫케익과 소시지를 시켜먹었다. 핫케익을 먹으니 웅기를 시카고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그때도 핫케익이 참 맛있었는데.

핫케익과 소시지, 맥머핀을 먹은 우리는 힘차게 액셀을 받았다. 신나는 노래와 함께 도로를 질주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후버댐 표지판이 보였다. 문득 친구가 후버댐 가볼만하다는 얘기를 해준 것이 기억났다. 

우리는 차 방향을 돌려 후버댐으로 향했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 이 댐의 크기는 굉장히 컸다. 트랜스포머에도 나왔던 곳으로 유명했다. 댐의 크기에 한번 놀라고 더운 날씨에 한번 놀랐다. 날씨가 푹푹 찌고 햇빛이 강렬한 게 이스라엘 광야를 걷는 기분이었다. 사실 댐의 규모보다 놀라 온 것은 댐 뒤로 펼쳐진 돌산의 지층이었다. 선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분명하게 그어진 지층이 마치 누군가가 자를 대고 그어놓은 것만 같았다.

후버댐을 다 보고 차에 돌아왔더니 차 안이 후끈후끈했다. 차를 환기시키고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일자로 곧게 뻗어진 도로와 넓게 펼쳐져있는 푸른 하늘, 양떼의 모습, 해변에 쓸려오는 파도의 모습, 왕 큰 솜사탕의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하늘 위를 여행하는 예쁜 구름, 도로 너머에 끝없이 펼쳐진 돌밭과 그 위로 듬성듬성 나있는 생명력 질긴 풀들, 곧게 뻗은 도로 위로 보이는 지평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국 애리조나의 풍경이었다. 여행하면서 그렇게 다양한 풍경을 봤는데 아직도 이렇게 다르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니. 세상을 만든 창조주의 손길은 실로 위대하다.

그런데 너무 단조로운 풍경의 연속이다 보니 운전자가 졸리기 십상이다. 차량의 속도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해 사고라도 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적당히 졸릴 쯤에 주유소에 들려서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고 화장실도 가고 스트레칭도 하고 기름도 채워 넣었다. 휴게소에서 육포 비슷한 스틱을 샀는데 짜고 느끼했다. 기름을 넣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 할머니가 번쩍이는 편광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색 대형 포드 트럭을 운전하며 주유소로 들어왔다. 노후를 멋지게 즐기는 아줌마 할머니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다. 나도 빨리 부모님께 폐 안 끼치고 스스로 인생을 살 수 있고 싶다. 언제까지 부모님이 못난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인생을 헌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름을 다 채운 우리는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수시간을 달려 그랜드캐년에 도착한 우리는 국립공원 입장료가 30달러를 지불하고 공원 내로 들어갔다. 근데 30달러가 너무 아깝도록 그냥 공원만 있었다. 뭐야 이게. 그냥 풀숲 있고 사람들 있는 공원이었다 실망이 컸다.

그런데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뭔가 사진으로 본 것 같은 그랜드캐년 모습의 일부분이 보였다 나는 여행하면서 가이드에게 배운 대로 고개를 숙이고 시야를 가렸다.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가야 한다. 그것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지 않고 기다렸다가 음미하면서 먹는 것과 같다 시야를 가리고 고개를 떨군 뒤에 걷다 보니 길이 끝나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시야를 가렸던 손바닥을 내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우와!...... 넋 놓고 바라보았다. 너무 초현실적인 풍경에 말문이 막혔다.. 바라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풍경. 사람이 만든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감동이 미려 왔다. 분명 눈을 가지고 보고 있는데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누군가가 그랜드캐년보다 페트라의 풍경이 더 멋지다고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곳은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기후와 느낌이 비슷하긴 했지만 요르단의 페트라와 미국의 그랜드캐년은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페트라가 전반적으로 둥글둥글한 바위산 같은 느낌이라면 그랜드캐년은 무지개떡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아 올린 느낌이었다.

화장실을 갔었는지 뒤늦게 온 한 친구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눈을 가린 다음에 그랜드캐년을 짠하고 보여주었다. 그 친구는 "와 대박사건"이라고 말한 뒤에 한동안 얼어있었다. 멋진 풍경을 사진을 찍고 싶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남겨놓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랜드캐년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찍어도 잘 나오는 사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순간을 즐겼다. 

아찔한 절벽 끝에서 즐기는 사진 촬영은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게 했다. 우리는 캐년을 나오면서 참 잘 왔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강한 햇빛에 피부가 익은 우리는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고 나오니 그랜드캐년 약수물 같은 게 있길래 한통 마셔보았다. 그냥 물이었다. 절벽에서 다급하게 올라오다가 친구의 선글라스를 실수로 밟아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했는데 친구는 쿨하게 괜찮다며 씨익 웃는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랜드캐년을 갔다 오는 관광버스가 보인다 우리는 가뿐히 추월했다. 관광버스보다 싼 가격에 재밌게 잘 다녀왔다. 미국 여행에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랜드캐년. 정말 그랜디 했다. 블루투스 연결의 문제로 아침부터 지금까지 같은 리스트의 노래를 듣는다. 한 친구는 노래 리스트를 외워서 부른다. 아이유 노래를 듣는데 다른 노래는 몰라도 아이유 노래는 들어도 들어도 좋다. 언젠가 직접 들어보고 싶다. 라스베이거스에 돌아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푹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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