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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y 11. 2016

혼자 여행 오셨어요?

혼자 여행할 때는 외롭다.

혼자 여행할 때는 외롭고 힘들다. 모든 대상을 구경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다 보니 새로운 세상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그저 관찰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때로 용기를 내서 그 무언가에 참여한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심리가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외로우니까.

용기를 내다보면 재밌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한국에서는 몸치라서 춤을 추면 모두 비웃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청소년부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준비하는데 율동 같은 것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모두가 내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그때 이후로 춤을 추는데 자신감이 없어졌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수련회 같은데서 율동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비웃고 친구들과 형누나들이 놀렸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이 비웃고 놀리니까 장난인걸 알면서도 괜히 위축됐다. 소심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게 자꾸 신경 쓰였다. '나는 춤을 추면 안돼'라는 생각이 나를 옭아맸다. 그러다가 프라하에 카를교 밑에 있는 클럽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춤을 추는데 나만 뻘쭘하게 서있었다. 신나는 분위기에서 동떨어진 기분은 굉장히 비참했다. 근데 문득 드는 생각이 여기는 나를 비웃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한번 미친척하고 춤을 춰보자라고 생각하고 춤을 췄다.  

춤을 추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내 몸짓이 신기했나 보다. 사람들이 내 몸짓을 따라 했다. 클럽을 지배하는 자와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몇 명이서 재밌게 놀았다. 신나게 춤을 추다 보니 땀이 났다. 행복했다. 그동안 왜 나는 비웃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까 후회가 됐다. 그 이후에 나는 기분대로 춤을 췄다. 아직도 내가 춤을 추면 사람들은 비웃는다. 내가 몸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남들 신경 쓰느라 내 인생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여행 중에 정말 기분이 좋을 때면 춤을 춘다. 그 순간은 내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 입장에서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다. 용기를 내는 것도 어느 정도가 되면 지치게 된다.

같이하는 여행은 외롭지 않다. 같이 있으면 별거 아닌 것으로도 웃게 되고 재밌는 일들도 많이 생긴다. 그러나 같이 있으면 내 감정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 서로의 관계에서 오는 책임감 혹은 신경 써야 할 부분들 때문에 내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다. 생각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모르고 붕 뜬 기분으로 다닐 때가 많다.

같이 있으면 관계에서 발생하는 트러블이 생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는 긍정적이다. 서로 다른 배경,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만나 트러블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항상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해 서로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의 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여행하며 발생하는 트러블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트러블을 이겨내면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된다. 같이 있으면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할 순 있어도 같이 하는 생각의 양이 늘어난다.

철썩거리는 바닷가 해변에 앉아 와인과 사이다를 마시며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의 꿈을 고래고래 소리칠 수도 있다. 강변에 앉아서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학교 다니면서 뭐했는지 앞으로 뭐할 건지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다. 같이 다니는 것은 그래서 좋다.

여행하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의 여행을 물어본다. 그러면 항상 듣는 질문이 혼자 여행 오셨어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혼자 여행하기도 하고 같이 여행하기도 하고 현지인들을 사귀어서 다니기도 하고 현지에 있는 한국사람 혹은 현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누군가와 같이 다니기만 하거나 혼자 다니기만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다면 여러 가지 방법의 여행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여태껏 갔던 미술관이 좋았었는지 잠에서 깨자마자 미술관에 대해서 얘기한다. 이륙하자마자 잠들었다가 잠에서 깨니 귀가 먹먹하다. 하품을 몇 번 하자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귀가 뻥 뚫린다. 체크인한 짐 찾는 곳에 가니 바로 짐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어린 소녀는 자신의 짐이 늦게 나와서 다른 사람의 짐을 조금씩 밀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빨리 나오는 줄 아나보다. 귀엽다.

공항 밖을 나오니 하늘이 회색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회색 하늘을 보았다. 웅기를 기다리기 위해 픽업 서비스 라인에서 대기하고 있다. 웅기가 어서 보고 싶다. 웅기를 만나기 전에 세 가지가 궁금하다. 첫 번째는 내 외모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 번째는 사진으로는 잘생겨졌던 웅기의 외모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세 번째는 채플린 인턴을 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지. 빨리 웅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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