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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n 17. 2016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자

여의도 벚꽃 축제 이야기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인터뷰하며 여행하는 재병이 형, 싸인을 수집하며 여행하는 이삭이,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며 여행하는 엉뚱한 새댁 부부의 태양님.
여행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전해지는 스토리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느꼈다. 생활비를 벌려고 시작한 즉석사진기를 사용한지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돈이 없으면 여행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어김없이 생활비를 벌어보려고 여의도 벚꽃축제에 즉석사진기를 들고 찾아갔다.  

꽃구경에 신난 사람들, 북적북적 거리는 분위기에 따뜻한 햇살 샤워를 했다. 낮에는 아름답고 밤이 돼도 예쁜 이 거리를 보니 봄 냄새가 물씬 난다. 저마다의 행복을 갖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토록 시리던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봄꽃이라 그런지 거리는 더욱 활기차다. 눈 깜박이면 사라지는 벚꽃.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너는 한 겨울 눈꽃과 같이 내 마음 설레게 해놓고 금방 사라진다. 꽃의 아름다움은 잠깐이다.

눈꽃은 봄기운에 녹고 벚꽃은 여름 입김에 떨어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순간 즐거운 순간 잠시 잠깐 스쳐가는 것. 누군가의 박수를 받는 것은 꽃과 같이 잠시 뿐이고 감내해야 할 현실은 가을처럼 쓸쓸하고 겨울처럼 차갑다. 어느새 걷다 보면 발길에 치이는 벚꽃 잎들. 아름답게 피고 지어 사람들의 발 밑에 깔렸다. 떨어진 꽃잎을 사뿐히 지르밟고 가는 사람들, 소월의 꿈처럼 3월의 꽃은 그렇게 피고 진다.

이번에 사진을 찍을 때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다. 돈은 얼마를 주던지 상관없다. 대신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하는 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지금까지 약 7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인테리어를 하는 신혼부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남자와 청소년 지도사를 하고 있는 여자 커플, 직장을 마치고 퇴근하는 3명의 여자. 날이 밝을 때 시작하여 어느새 달이 밝을 때가 되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내게 말했다. “저기요, 이거 뭐예요?”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제가 즉석사진기를 들고 지구 한 바퀴 여행을 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작가예요?” 나는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써서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작가예요.”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는 이 사람의 꿈은 노벨상을 받는 무협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교x문고 인터넷 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지금 32살이에요. 15살 때부터 작가를 꿈꿔오고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고 다녔지만 정작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요. 젊은 날의 게으른 시절이 너무 후회가 됩니다.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않고 작가라고 떠벌리고 다닌 것이 너무 부끄러워요. 그러다가 교회를 부탁해라는 만화를 그린 에x 작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정신 차려서 글을 열심히 쓰고 있어요. 에x 작가님은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서 서울로 혼자 찾아와서 목사님 사무실에 빌붙어서 먹고 자고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많은 반성과 귀감이 됐습니다. 흔히들 작가를 연봉 240만 원짜리 직업이라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스타작가들 외에는 이게 현실이에요. 저는 그 현실이 두렵지만 내가 정말 이걸 하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을 때 하고 싶다고 대답했고 지금 그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만약 글을 쓰실 거면 영감을 핑계로 게으르게 살지 말고 부지런히 사세요. 젊은 날의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근 들어 밤낮이 바뀌어 살던 내게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었다. 글 쓸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허세 부리며 제대로 된 문장 하나 완성하지 않고 허송세월 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밤낮이 바뀌고 게으름이 허리와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게 되는 것은 나를 ‘멍~’ 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원래 잡아놓은 약속을 3개나 잊어버려서 신용을 잃게 되고 내가 뭐하고 사는지도 제대로 모른 채 생존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정신 차려야겠다.

‘Humans of 시리즈’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은 여행가들의 아이디어를 따라 해 보았다. 즉석사진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 이번 프로젝트는 어쩌면 내 여행의 또 다른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의도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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