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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n 23. 2016

나뭇가지에 걸린 청춘

책임질 것이 아직 많지 않을 때 내 청춘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나는 벚꽃축제 거리를 걸었다. 허다한 커플들을 계속 보고 걷자니 속상해서 시선을 높여 푸른 하늘에 피어있는 벚꽃들을 보았다. 분홍의 수채화 같은 나무들 사이로 보인 것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의 풍선들. 나무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풍선을 보고 있자니 흡사 벚꽃 나무에 열려있는 열매 같았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자 풍선도 몽실몽실 움직였고 뒤편에 숨겨져 있던 쭈글쭈글한 풍선이 보였다. 부푼 꿈을 가슴에 앉고 하늘 높이 날아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풍선. 색깔은 여전히 알록달록하지만 쭈글쭈글해진 풍선. 풍선을 보고 있자니 우리들의 청춘을 보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 한껏 부푼 꿈을 안고 날아오르다가 현실이라는 나뭇가지에 걸려 어느새 쭈글쭈글해진 우리의 청춘. 나는 암울한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야속하게도 이런 내 마음을 모르고 파랗기만 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길거리에 삼각대를 세웠다. 그러자 거리 단속반이 와서 내게 말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잡상인 출입금지입니다. 어서 나가세요." 나는 이 프로젝트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단속반은 사라졌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서 나를 지켜보던 한 커플이 찾아와서 물었다. "이거 찍어주는 거예요?" 풋풋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은 안암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22살 캠퍼스 커플이었다.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친구였는데 꿈을 물어보니 공무원이 꿈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벌써부터 공무원이 꿈이면 지금 하는 공부가 재미없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사실 저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로봇을 만드는 일이요. 그런데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네요. 부모님께서는 여자가 무슨 사업이냐고, 안정적으로 공무원을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저는 아직도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안암 커플이 지나가고 다른 커플이 찾아왔다. 학교에서 경영을 공부하는 용인에 사는 25살. 이 남자의 꿈은 회계사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직업을 꿈으로 삼으면 나중에 허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는 "직업 이상의 꿈을 갖는 건 사치라고 생각해요. 일단 회계사가 된 다음에 다른 꿈을 가져봐야죠."라고 대답했다.

용인 커플이 지나가고 또 다른 커플이 왔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는 22살 남자와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24살 여자였다. 남자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꿈이었고, 여자는 취업이 꿈이었다. 여자는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원래 저는 외교관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이 직업이 가정을 이루는데 힘든 직업이다 보니 지금은 그냥 일반 회사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취업이 꿈이에요 이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까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약 30명 정도를 인터뷰했는데 취업을 한 모두가 하는 말이 뭐였는지 알아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뭔데요?" 나는 대답했다. "젊은 시절 내 꿈에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볼 걸 그랬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내 눈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다가 이내 초점이 잡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그럼 조금 더 꿈꿔 볼게요. 고마워요 정말." 그녀는 사진을 들고 남자친구와 함께 웃으며 돌아갔다. 
날이 어두워지고 아까 찾아왔던 단속반이 내게 또 찾아왔다. 그리고 나를 불렀다. "저기요" 나는 '얘네가 또 뭔 트집을 잡으려고 왔지.' 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네, 왜요?" 그러자 단속반이 내게 물었다. "이거 저희도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쪽으로 오세요." 그들은 21살, 23살에 벚꽃 축제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로 불법 노점상 단속을 하고 있었다. 꿈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한 명은 "글쎄요. 꿈이 없어요. 군대 가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고 싶은 거 다하는 게 꿈입니다." 대답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군대 전역하고 어머니하고 장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돈을 모으고 있어요. 전역할 때까지 1000만 원 모으는 게 목표입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헤어졌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갔다. 그런데 옆에 있던 유섭이가 내게 물었다. "나는 인터뷰 안 해?" 나는 대답했다. "그럼 말해줘 봐." 유섭이는 경영을 공부했다. 경영 공부하면 나중에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이것저것 굉장히 많이 배워서 딱 이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취직하기 좋은 학과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꿈을 물어봤다. 그러자 유섭이가 대답했다. "난 꿈이 없는 게 고민이야. 4학년이 되고 졸업할 때가 되면 알아서 뭔가가 생길 줄 알았는데 꿈을 꾸는 것보단 취업을 하는 것이 급선무가 돼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아버지 하고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고민만 깊어지고 답이 보이질 않네."

밤이 깊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됐다. 돌아올 때 보였던 벚꽃 나무에 매달린 풍선들이 사라졌다. 땅으로 떨어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내가 찾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진 풍선들이 걸려있던 나뭇가지들을 보니 다시금 현실의 벽이 생각났다. 사진을 이렇게 돈도 제대로 안 받고 그냥 찍어주면 오래 찍지 못할 것 같았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싶은데 돈이라는 현실이 가로막는다. 오늘 다녀간 수많은 청춘들이 가로 막혔던 그 벽. 하지만 나는 뜻이 있는 곳에는 돈은 따라온다고 믿는다. 현실에 이끌려다니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청춘. 책임질 것이 아직 많지 않을 때 내 청춘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처음엔 작은 풍선처럼 보일지라도 계속해서 커진다면 열기구가 돼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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