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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l 03. 2016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무풍이 온다.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신 김승진 선장님과의 만남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나는 초등학교에서 하는 해양소년단에 들어갔다.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솟는 뽀빠이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10년 전, 나는 원피스라는 만화를 봤다. 만화를 본 후에 난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 해적왕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3년 전, 나는 귀신 잡는 해병이 되었다. 그러나 넘치는 자신감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다시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나는 한 기사를 보았다. 요트로 무기항, 무원조 세계일주를 한 김승진 선장님의 이야기였다. 김승진 선장님은 아라파니호(배 이름) 위에서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뽀빠이이자,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선장님이며, 멈출 줄 모르는 도전정신을 가진 사나이였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1년 동안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다가 연락을 드려보았다. 수차례의 연락이 오갔지만 선장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광화문 카페에서 앉아있는데 김승진 선장님이 광화문에서 강의를 하신다는 얘기를 SNS에서 보았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김승진 선장님이 계셨다. "정말 뵙고 싶었어요. 존경합니다." 내가 선장님께 말하자 선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반갑네요. 강의에 와줘서 고마워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그러니까 김승진 선장님이 30대 후반일 때. 그때 선장님은 ‘7개의 바다를 찾아서’라는 책을 보게 됐고 가슴속에 요트로 무기항 무원조 단독 세계일주를 하는 것을 꿈꾸셨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한 것은 53세였다. 어쩌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뉴질랜드에 있는 딸을 부르셨고 출항 전에 꼭 안아주었다. 아라파니호가 출발 한 뒤 태평양을 지날 때 쯔음, 태풍이 아라파니호를 부수기 시작했다. 부서진 아라파니호를 고치고 고장 나고 고치고 고장 나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72일 정도를 수리하고 나니 어떤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중간에 돌고래를 구경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상어를 만났다. 상어와의 긴박한 사투 속에 선장님은 결국 상어를 피해 아라파니호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남극에 가까워지니 아라파니호가 뒤집혔다. 그렇지만 아라파니호에는 아라파니호의 중심을 잡아주는 무거운 중심추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정상으로 복구되었다. 중간에 만난 ‘이리와’라는 이름의 앨버트로스(새)와 수많은 새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선장님은 마지막 남은 햄을 이리 와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무려 햄을. 아시아를 지날 때는 해적을 만났다. 내가 상상한 흰수염 해적단 같은 해적단이 아닌 생계형 해적이었다. 때문에 김승진 선장님의 아라파니호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해적을 피해 김승진 선장님은 한국에 돌아왔고 열렬한 환영 속에 딸과 어머니를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강연을 마친 뒤에, 김승진 선장님은 내게 커피 한잔을 사주셨다. “저는 지금까지 27개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지구 한 바퀴 여행을 다녀오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저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여행을 다녀온 사람. 그 뿐이었어요. 그것에서 오는 회의감과 다른 사람과 저를 비교하는 못 된 마음이 점점 저를 더 조급하게 만들어요.” 나는 나의 이야기를 선장님께 들려드렸고 선장님은 진심 가득한 눈으로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선장님이 말씀하셨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무풍이 찾아와요. 오직 바람으로만 항해하는 저에게 무풍이 찾아온다는 건 그 자리에 멈춘다는 걸 의미하죠. 그때 마음이 굉장히 조급해져요. 빨리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빨리 더 가야 하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순간을 즐기게 돼요. 무풍은 항상 오는 법이니까. 무풍 자체를 즐기는 거죠. 수영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그렇게 그 순간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돼요. 무풍을 즐기다 보면 바람이 옵니다. 처음엔 작은 바람이 와도 서둘러 돛을 펴고 에너지를 쏟는데 사실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에요. 작은 바람까지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죠. 큰 바람이 올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는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큰 바람이 내게 오면 그 큰 바람을 타고 바다 위로 쓰윽 미끄러지는 거예요. 처음엔 큰 바람이 무섭지만 나중엔 큰 바람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깨지고 부서지는 경험이 필요해요.”

선장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난 뒤에 내 카메라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그 카메라는 뭐예요? 아까 보니까 신기하던데” 나는 선장님께 대답했다. “즉석사진기입니다. 나름대로 제 여행의 테마입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있어요. 오늘 앨범을 가져왔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네요. 다음 전시회 때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요즘 백수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여행 얘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여행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얘기를 하자 선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서준 씨가 처음부터 여행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젊음 자체를 즐기는 거죠.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지금 여행의 목표를 정해서 유명해지면 그 이후에도 그런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 거예요. 젊은 시절 유명세와 돈은 작은 바람과 같습니다. 큰 바람을 기다리고 그 큰 바람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실력과 여유를 쌓기를 바라요. 그것이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거든요. 그리고 저도 젊은 시절 이불속에 늦은 시간까지 누워있으면서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웃긴 건 그러면서도 계속 누워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조급해하지 마요. 그 순간도 즐기는 거예요. 앞으로도 그렇게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있을 때도 있고, 열심히 일할 때도 있는데 누워있을 때 조급해하고 일할 때 후회하면 인생이 피곤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왔다 가는 거잖아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꿈은 이뤄가는 과정을 즐기는데서 빛나는 것이고 소중한 가치를 지니거든요. 이뤄가는 과정을 즐기는데서 꿈의 원동력도 생기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도 지구 반 바퀴 여행을 두 번 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책을 내려고 하지도 않았고 무언가 유명해지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무기항 무원조 세계일주를 하기 전까지 차분히 기다렸습니다. 이번 도전은 하나의 역사였기에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러 다녔습니다. 항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저의 힘뿐만이 아니었어요. 저를 아시는 분들이 스폰서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함께 애써주신 덕분에 저는 항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었죠. 제가 처음부터 혼자 유명해지려고 발버둥 쳤으면 이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행 중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여행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인생을 길게 보세요. 지금 53살이 된 나도 꿈을 꾸고 사는데 이제 시작해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26살이 무슨 걱정이에요? 서준 씨의 꿈을 꾸세요.”

이야기를 마치고 커피에 동동 떠있던 얼음이 모두 녹아 물이 되었을 쯔음, 선장님은 내일의 강연을 준비하러 떠나셨다. 선장님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여운은 커피보다 진하고 5월의 햇살보다 따스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래의 불안감에 쫓기며 사는듯한 내 인생에서 오늘 조금이나마 해방이 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26살 청춘, 무풍을 마음껏 즐겨야겠다. 그것이 큰 바람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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