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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01. 2016

녹차는 스스로 푸른빛을 잃었다.

나도 녹차처럼 푸르고 싶다.

들어가는 길목까지 길게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고 택시에서 내려 걸어갔다. '하 호 흐 허' 모두가 외부에서 렌터카들이었다. 사람들은 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도 그랬다. 교회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여기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예배하러 왔는데 교회가 너무 예뻐서 정신이 팔렸다.

예배 시작 전에, 피아노 선율로 된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거룩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찬양소리가 나자 새들이 창가 위에 앉아서 같이 노래를 한다. 동화 속에 있는 듯하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 밖으로 나오니 산들바람과 펼쳐진 잔디,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제주의 평화로움을 그대로 담은 모습 이어서일까. 불어오는 산들바람만큼이나 푸르다. 잔잔한 물 위에 떠있는 나룻배 같은 느낌의 아름다운 교회.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서 은총이 느껴진다.

잔디 위에서 뛰놀다가 어린아이 아이 한 명이 넘어졌다. 같이 뛰던 남자아이는 속절없이 바라만 본다. 여자아이는 서러웠는지 으앙 크게 울어버린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잖아?'라는 듯의 남자아이의 표정은 넘어져있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더 크게 한다.
아이가 울고 있자 어머니가 달려와서 "괜찮아. 이렇게 해봐 봐" 하며 일으켜준다. 무릎 위에 상처도, 얼굴 위에 눈물자국도 아직 지워지지 않았지만 괜찮다는 어머니의 말과 포옹에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누군가 쓰러졌을 때 사랑으로 안아주자. 넘어져있는 아이를 일으키는 것은 효율적인 충고가 아닌 진심 어린 사랑이다.

교회를 나와 오설록을 가려다가 길을 잃었다. 그때 큰 가방을 메고 온 한 외국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설록 어떻게 가야 해요?" 나는 대답했다. "몰라" 그렇게 터키계 독일인 할릴하고 만났다. 내가 택시비를 내고 그녀는 내게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그녀는 굉장히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세계여행 중이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릴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대구에 있는데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해서 저 가방에 가득 담아왔어. 저거 다 초콜릿이야." 이 얼마나 대단한 정성인가.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설록 녹차밭 구경을 하다가 그녀는 저녁 스케줄이 있다며 먼저 갔다. 나는 혹시나 살 것이 있을까 해서 다시 박물관 안으로 와서 구경을 하는데 누군가가 녹차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녹차를 기를 때는 규칙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중요합니다. 진심 어린 사랑이 배어있는 녹차는 맛이 없기 힘들죠. 아무 향도 나지 않는 평범한 이파리가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녹차가 되기 위해서는 가마솥 위에서 자신을 불태우고 푸른빛을 스스로 잃어야 합니다. 그렇게 불에 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던져 자신의 모든 것을 우려내면 비로소 녹차의 푸르름이 눈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지요."

넘어져있는 아이를 진심 어린 사랑으로 일으켜준 어머니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10kg가 넘는 초콜릿을 가방에 넣고도 행복한 할릴에겐 이미 녹차의 푸르름이 마음속에 가득해 보였다. 나도 녹차처럼 그렇게 푸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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