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삼위일체가 안 믿어진다.
신학교 4학년을 졸업하는데 솔직히 삼위일체가 안 믿어진다. 교회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이 세 존재가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이다.'라는 것을 믿는데 나는 수십 권의 신학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발표를 해도 이게 솔직하게 말해서 안 믿긴다. 이 교리 때문에 수억 명의 사람들이 서로 전쟁을 일으켜서 죽고 싸우는 역사가 2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다. 권력자들의 욕심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빈, 웨슬리, 본 회퍼, 칼 바르트 등과 같이 천재라고 불리는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증명하지 못했던 것을 내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천재들이 다 증명 못했으니까 너도 증명 못할 거야. 남들이 믿으니까 너도 그냥 믿어!"라고 강요받는 것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삼위일체 논쟁이 시작된 곳을 직접 여행해보기로 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 처음에는 각자 의견을 갖고 얘기를 하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공인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통일성을 가질 필요가 생겼고 여기저기서 각자의 지역을 대표하는 교부들이 예수님은 누구인가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한다. 토론은 크게 두 가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와 예수님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로 나뉜다.
A.D 325년, 니케아(지금의 이즈니크)라는 곳에서 서로 결판을 짓기로 하고 황제의 주관 아래 공의회가 열린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이다.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터키의 이즈니크라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향한다. 버스는 수시간을 달리더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려 배 갑판으로 나와 햇살을 즐긴다. 어디선가 갈매기 날아와 사람들에게 빵부스러기 동냥을 한다. 빛나는 태양, 일렁이는 물결, 스쳐가는 바람, 내리쬐는 햇살. 지금 건너는 이 바다는 아리우스가 건넌 바다였겠구나.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의 신앙을 관철시키는 데에 성공을 기원하며 이 바다를 건넜을까. 빛나는 태양처럼 자신의 믿음이 만민 앞에서 빛나기를 기도하며 건넜을까. 일렁이는 물결은 갈릴리 호수의 물결과도 같고 따가운 햇살은 평화롭기만 하다. 이 바다를 건너면 폭풍이 몰아칠 줄 누가 알았으랴. 풍랑이 되어 그들을 집어삼킬 줄 어떻게 알았으랴. 풍랑으로 내모는 예수님의 마음을 몰랐던 제자들처럼 아리우스 또한 그러했을까.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폄하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가 믿는 예수님은 그에게 있어서 철저히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다 보니 예수님의 위치가 낮아졌다. 적어도 나의 위치를 드러내려다 보니 하나님의 위치가 낮아지는 나보다는 아리우스가 백번 낫다. 그는 목숨을 걸고 비장한 마음으로 이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내가 죽던지 네가 죽던지 한판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세월의 바다에서 아리우스는 하나의 부서지는 파도였다. 배는 지나가고 파도는 부서진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언젠가 우리도 파도가 되어 흩어진다.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거는가. 아리우스의 마음을 공감하려 글 한번 써보지만 끝내 이렇다 할 영감은 얻지 못하고 강한 햇빛에 피부만 까맣게 탄다. 이 바다를 건너가서 저기 도착할 쯔음에는 무언가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