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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Apr 24. 2016

프랑스를 걷다.

어려 보이는 중국인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실제로 어리다. 20대 초반의 커플들이다. 신혼여행을 온듯하다. 20대 초반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이 부럽다. 나도 사랑하는 여자하고 결혼해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내 삶은 무엇인가. 내가 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을 말하는가. 지금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주도적으로 사는 삶이기에 어린 부자 중국인들을 부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폴라로이드 장사로 겨우겨우 돈 모아서 여행해도 한국에 가면 안정적인 직장 하나 없는 백수에 불과한데, 저들은 돈이 많아서 아이디어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던가 구상하고 있는 것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부러운가 보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내 삶을 사랑할 줄 알자. 사실 알고 보면 매력적인 삶이다. 가고 싶은 곳에 여행을 갈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내 삶을 사랑하자. 감사는 많은 돈과 풍요로운 기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에 루브르 워킹투어를 하러 나갔는데 한 카페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한국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이드들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여서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가이드할 준비를 하는 모습이 무슨 전쟁 준비를 하는 군인과 같았다. 프로의 자세가 느껴졌다. 나는 그 옆에서 가이드님이 사준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를 먹었다. 파리에서 먹는 크로와상은 정말 맛있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꼭 먹어야겠다.

시작은 생 미셸 광장에서 시작해서 루브르까지 계속해서 걸어갔다. 가이드님의 설명이 끊이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끊이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2년 전 노트르담 성당에 왔을 때 그냥 멋진 성당이구나.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본 성당이구나. 사진 찍으면 예쁘겠구나 하고 기념 코인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거 모아서 얻다 쓰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으로 그냥 햄버거나 사 먹을 걸 그랬다. 가이드님은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성당의 구조물들을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설명이 워낙 재밌고 능숙해서 노트르담이라는 제목의 한 권의 책을 읽어주는 것 같았다. 복잡하고 비밀스러웠던 성당은 그렇게 하나둘씩 읽히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음식이 없어서 굶어 죽어갈 때 성직자들은 툭 튀어나온 배를 갖고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굶는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 찾아가 교회 안에 있는 금으로 만든 십자가와 보물들을 녹여서 아이들을 먹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돼지 같은 성직자들은 이를 거절했다.

예전하고 지금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지금은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관리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성으로 살찐 사람들이 더 힘든 인생을 살고 있긴 하다. 몇몇 큰 교회의 성직자들은 교회의 건물을 키우고, 고급 세단의 차를 타고 다니며 비싼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 거리의 가난한 사람이 즐비하고 옆 동네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은 그들이 내세울 어느 정도의 자선활동 외의 활동에는 몸을 움츠린다.

313년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공인된 후에 박해받던 교회가 힘을 얻게 되고 도리어 박해를 하는 입장에 섰을 때부터 교회는 진리로부터 위태해졌다. 맞는 자가 왼뺨을 맞았을 때 오른뺨을 대는 것은 위대한 역설이지만, 때리는 자가 왼뺨을 때렸으니 오른뺨도 대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의 정당화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굶어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어떤 창보다 날카로운 분노라는 창으로 교회와 국가를 공격했고 종교라는 탐욕은 그렇게 무너졌다.

코르시카 섬 출신의 나폴레옹이 연달아 전쟁에서 승리하며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황제의 대관식은 교황이 황제가 될 사람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프랑스 성당의 가장 중심인 노트르담 성당에서 이뤄졌다. 국민들은 교회가 다시 권력을 꿰차는데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황제가 주는 왕관을 본인이 빼앗은 후에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직접 썼다. 얼마나 통쾌한 순간인가.

그 순간을 상상하며 노트르담 성당을 보니 노트르담이 달라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껴진다는 것이 새삼 다시 상기되었다. 종교가 본질을 잃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노트르담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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