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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너 무슨 돈으로 그렇게 여행 가?

여행을 가고 싶은데 돈이 없다.

난 15살 때부터 지금까지 약 25개국을 여행했다. 중국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우간다, 일본, 오스트리아, 독일,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등의 국가를 봉사활동이라고 쓰고 단체여행이라고 읽는 관광을 다녀왔다. 신나게 여행을 다니다가 입대할 시기가 찾아오고 군대에서 훈련을 받던 도중 가장 생각나는 것은 헤어진 여자친구도, 입대하기 전에 남긴 햄버거도, 아직 챙겨보지 못한 만화도 아니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 본인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 나온다고 하는데 내겐 여행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여행 다니면서 걸었던 거리의 분위기, 그곳의 냄새,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

훈련을 마치고 첫 휴가를 나와서 유럽 여행 책을 샀다. 내게 6시간 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잠을 줄이고 3-4시간만 자면서 열심히 여행 공부를 했다. 나는 예술적인 소질이 없어 미술시간에 항상 손바닥을 맞았다. 풍경화를 그리는데 나무가 휘어졌다고 맞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나 같이 생기지 않았다고 맞고, 미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맞고, 예수 조각상을 그리는데 그림을 못생기게 그려서 신성모독이라고 맞았다. 수업시간에 맞은 기억밖에 나지 않는 미술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유럽에는 가는 곳마다 미술관, 박물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술사 책을 사 와서 공부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이 단순히 그림만 예쁘게 그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0년 전에 존재했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밌었다. 미술 이야기는 철학과 종교와도 연결이 되었고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행 공부를 해나갔다. 그리고 30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다시 여행을 가야겠다. 여행은 내게 흥미로운 도구가 되었고 대학교 수업시간을 여행에 맞춰서 짰다.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가고 싶으면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받은 초대교회 사람들의 삶을 공부하고 그리스를 가고 싶으면 살라미스 해전과 테르모 필레 전투, 마라톤 전투에서 있었던 전쟁사를 공부했다. 로마를 가기 위해 트로이 신화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공부도 저절로 되고 여행 준비도 함께 되었다. 그렇게 여행 준비를 하고 50일 동안 필리핀-말레이시아-UAE-터키-그리스-이태리-스위스-프랑스-루마니아-카자흐스탄-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또다시 생각했다. '여행을 또 가야겠다.' 5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야 넌 무슨 돈으로 그렇게 여행을 가?"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온 내게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는 질문 다음으로 하는 질문이었다. 군대 다녀온 후에 갔던 한 달간의 유럽여행은 약 680만 원의 경비가 들었었는데 그때 당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모아 온 적립식 펀드를 깬 돈, 군 생활 중 병사 월급을 아껴서 모아 온 돈, 군인 휴가 때마다 나가서 받은 용돈에서 틈틈이 모아 온 돈을 아껴서 갔었다. 복한 한 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떠났던 약 50일간의 여름 여행은 학교에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 모은 돈, 겨울 여행 때 남은 돈, 친척들 만나서 받은 돈을 모아서 갔다. 두 번째 여행은 첫 번째 여행보다 노하우가 생겨서 더 좋은 질의 여행을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갈 수 있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또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왠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 방학 때는 다녀온 여행정보들을 정리하고, 부족한 언어와 공부를 하는데 열심을 다했다. 근데 여행을 꾸준히 가다가 안 가니까 뭔가 삶이 무력하고 지치는 감이 있었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지만 그것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약이었다.

겨울방학을 보내는 시간 동안 여행을 돌아보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슨 돈으로 여행을 갈까. 생각해보니 군인 월급 말고는 모두 부모님의 용돈을 아끼거나 주변에서 받은 돈을 아껴서 가는 것이었다. 한계가 느껴졌다. 이 나이 먹고 수입도 없으면서 지출만 계속 나가는 사실이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했다. 지출만 하는 소비적인 여행 말고 생산적인 여행의 형태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롤모델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세 가지 유형의 여행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유명해서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 남의 돈으로 여행하는 사람

2. 유명하지 않지만 공모전을 통해 여행을 가는 사람

3.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알바를 해서 자기돈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굳이 정하자면 유명하지도 않고 부모님 잘 만나서 부모님 돈으로 여행 가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를 도전해보기 위해 영상제작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가 올라가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고 후원이 들어오겠지 싶었다. 근데 영상을 맡긴 동생이 아직 소식이 없다. 내가 영상을 만들어볼까 했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를 도전하기 위해 아 X아나 드림윙즈, 신X계 그룹 공모전을 준비해보았지만 학교 스케줄과 겹쳐서 생각만큼 열심을 다하지 못했다.


세 번째를 준비하려고 알바 자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최저시급으로 여행 갈 돈을 모은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 했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는 후회를 남길 것 같았다


그래서 장사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공부에도, 돈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밥버거를 만들어서 물가가 비싼 스키장 주차장에서 팔까? 청계산 꼭대기에 가서 밥버거나 마실 것을 팔까? 콘서트장이나 경기장 근처에 가서 핫팩이나 돗자리 혹은 야광봉을 팔아볼까?

수많은 아이템과 아이디어들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에 문득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파는 것을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난 사진을 유명 관광지에서 팔면 잘 팔리겠다 싶었다. 그리고 장비를 구입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여러 번의 답사를 통해 자리를 확보하고 혼자 장사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커플이 참 많았다. 커플들은 내게 크리스마스 저녁에 혼자 뭐하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여행 갈 돈 번다고 말했다. 왠지 씁쓸했다.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게 쑥스러웠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돈을 세어보았다. 생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렇게 여행에 대한 발걸음을 한 발자국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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