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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대박을 노리고 간 정동진

돈 벌기 힘들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12월 26일에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특히 낮에는 손님들이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특별한 날에 주로 장사가 잘되는 사실을 실감했다.

1월 1일 동이 트는 날, 어느 장소가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중에 문득 정동진이 떠올랐다. 1월 1일만 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라는 그곳.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잠정적 손님들도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왠지 대박의 기운이 느껴졌다.

고등학교 친구인 유섭, 채진과 함께 넉넉히 필름과 장비를 챙겼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분당 서현역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이른 밤에 출발했다. 정동진 푯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쯤, 도로변에 차들이 굉장히 많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도착하기까지 아직 거리가 꽤 있었는데도 여기저기 사람들이 주차해놓고 정동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차할 공간을 어렵게 찾은 후에 차에서 내려보았다. 날씨가 굉장히 추웠다. 안에 세 겹을 입고 겉옷을 입었는데도 굉장히 추워서 유섭이가 빌려준 패딩점퍼를 입었다. 그래도 추웠다. 해 뜰 시간까지 약간 시간이 남아서 잠시 눈을 붙였다.

뭔가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 잠에서 깼는데 문이 열려있었고 채진이가 밖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그리고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아뿔싸! 잠에 너무 깊게 들어서 정동진까지 차를 타고 와서 장사도 못하고 동트는 것도 못 보고 차 안에서 남자 셋이서 꾸벅꾸벅 잠이나 잤구나.'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이건 꿈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볼을 꼬집어보았다. 안 아팠다. 정말 꿈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바다의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옷을 겹겹이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매우 추웠다. 우리는 부푼 가슴을 안고 희망차게 정동진의 해변을 향해 걸어갔다. 정동진의 해변에서는 KBS 차량이 와서 촬영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짐과 새소망을 갖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새해 소망을 담아 연등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에 올 때는 연등 장사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가족끼리 와서 돗자리를 펴고 오손도손 치킨을 먹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커플끼리 와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 여럿이 와서 우정을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잠정적 손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드립니다. 찍으면 바로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드립니다." 몇 번을 외쳤을까. 어떤 사람이 와서 내게 물었다. "이거 사진 잘 안 나오면 어떡해요? 돈만 내고 끝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잘 나올 때까지 찍어드립니다. 한번 찍으시겠어요?" 그렇다. 안 나온 사진은 돈을 받을 수 없다. 돈을 벌고 싶긴 하지만 그것은 내 실수 이기 때문이다.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어디서나 있는 진상 손님들이 찾아왔다. "저기요, 이거 제 남자친구가 못생기게 나왔는데 다시 찍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 다시 찍어드릴게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자기 남자친구 얼굴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무튼 이번에는 조명 값을 더 주어서 화사하게 찍어주었다. 아무래도 진상 손님의 못생김을 조금이라도 감춰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상 손님은 그 이후로도 어디선가 계속 나타났다. 키가 작게 나왔다. 얼굴이 크게 나왔다. 남자친구 배가 나왔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2000원 내고 5-6장의 사진을 찍어갔다. 필름값이 한 장에 700원 정도 하는데 2000원 내고 6장 찍어가면 2000원가량이 손해가 났다.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장사였기 때문에 감정 소모도 대단했다. 진상 손님은 사진을 찍고 나서도 온갖 모아 왔던 짜증을 내게 풀고 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가. 돈 벌기 힘들다.

사진 장사를 마치고 채진, 유섭과 함께 정동진과 강릉을 돌아다녔다. 강릉에는 고종황제가 마시던 커피 이후 로우리 나라에 커피를 처음으로 가져오신 박이추 선생의 제자들이 커피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중 유명하다던 카페 테라로사에 가서 커피도 마셔보고, 허난설헌의 생가 앞에서 막국수도 먹었다. 그 순간이 왠지 꿈만 같았다.

2013년 8월 15일에 나는 군인이었다. 휴가를 나와서 내일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정동진을 들렸었다. 군인일 때는 다시 여기 올 때쯤에는 전역을 하고 오는 거겠지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고 실제로 나는 전역을 하고 그곳에 갔다. 친구들과 함께 다시 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서 좋았다.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과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볼을 꼬집어 보니 아팠다. 꿈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정동진에서 생각했던 금전적인 대박은 이루지 못했다. 사실 그날 번 돈을 기름값과 휴게소에서 사 먹은 것, 강릉과 정동진에서 먹은 것, 그 외의 것으로 많이 썼다. 또 번 돈을 3분의 1로 나누니까 그리 큰 이익은 없었다. 손해는 보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또 셋이 함께 하니까 행복이 3배였다. 각자 몇 만원씩 손에 쥐고 새로운 추억을 가슴에 새겼다. 그걸로 만족했다. 1월 1일의 해는 그렇게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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