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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그 곳에 우리가 설 곳은 없었다.

좌절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남산타워에서 장사를 하기 전에 사전 답사를 여러 번 했다. 어느 장소에서 찍어야 하는지 카메라의 조리개 값은 얼마나 들어가는지 어떤 대상을 어떤 구도로 찍을 것인지 여러 번에 걸쳐서 먼저 가서 수 많은 연습을 했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단속이었다. 어느 추운 날 장사가 잘 되고 있을 때, 청소하시는 분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이거 치우세요.' 순간 기분이 조금 상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이 추운 날 밖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이거'라니 매우 천시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저씨가 지나간 후에도 장사를  계속했다. 아저씨가 또 와서 말했다. 아까 치우라고 했을 텐데? 빨리 치워요! 아저씨는 사진 찍는 손님을 무시한 채 카메라 렌즈를 가렸고, 직원들을 부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부랴부랴 장비들을 챙겨서 남산타워에서 쫓겨났다. 남산타워 측에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봐서 남산관리과에 전화해보라고 했고, 남산관리과에 전화했더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곳에서 이미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장사하고 있는지를 물었지만 남산타워가 생기기전부터 일을 하시던 분들이라 관례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젊은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장사를 하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귀찮다는 듯이 그 사람들은 본인들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남산타워 측에 돈이 별로 되지 않았다. 나 같아도 대충 둘러대고 쫓아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산타워 측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서 사정을 해볼까? 아니면 직접 찾아가볼까? 돈을 빌려서 큰 돈으로 먼저 계약을 맺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일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그 윗사람을 알고 친해놓으면 안되던 일도 금방  해결된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내 개인적인 도전을 위해서 주변의 인맥을 동원하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 방법을 찾고 찾다가 지치게 되었다.   


장사한지 약 이주만에 겪는 좌절이었다. 

좌절은 그렇게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남산타워에서 쫓겨난 뒤에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했다. 플랜 B는 남대문 신세계백화점 앞에 드라마 촬영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는데 막상 가서 촬영해보니 사진도 이상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여러 포인트를 생각해보았다. 강남, 명동, 신촌, 홍대, 압구정, 이대 등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찾아가보고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생각보다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공간이 없으면 시간을 노려보자' 같은 장소라도 일정한 시간 내에는 붐비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반대 인 곳도 있었다.  그중에 장사가 잘 될 만한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입대할 때가 생각났다.

훈련 중에 너무 힘이 들 때 꺼내보았던 가족사진이 생각났다. 군부대는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또한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지만 사진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그렇기에 폴라로이드 장사는 그곳에서 참 좋은 아이템인 것 같았다. 내가 입대했던 포항은 거리상으로 너무 멀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의정부로 눈길을 돌렸다. 근데 의정부에 있는 306 보충대는 얼마 안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102 보충대로 가게 되었다. 혼자 가기엔 너무 후달렸다. 그렇기에 친구들과 함께 갔다. 아침 일찍 차를 타고 출발했다. 친구 중 한 명은 밤늦게까지 동생하고 만든 홍보피켓을 가져왔고, 한 명은 운전을 맡았다. 군입대하는 장병들을 바라보니 예전 생각이 나며 가슴이 짠해졌다. 아들을 보내는 부모님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대하는 본인은 아직도 어벙 벙한 상태인 듯했다. 낯선 이별과 막연함 두려움이 장병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애써 웃으며 씩씩한 척하는 사람,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가득한 사람,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었다. 우리는 위병소 근무자가 허락해준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아저씨 한분이 오셔서 고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치워!" 아저씨는 여기서 사진 장사하면 안된다고 했고 장사할 거면 저기 주차장에 가서  장사하라고 했다. 우리는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서 주차장 쪽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서 험상궃게 생긴 아저씨가 또 소리쳤다. "야 시발 치워!" 걸쭉하게 욕을 몇 번 하신 뒤에 여기서 장사하지 말고 저기 위병소 앞에서 장사하라고 했다. 우리는 저기서 여기로 쫓겨난 거라고 말을 하자 아저씨는 "어떤 새끼가 그래? 그 새끼 일로 오라 그래."라며 욕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위병소 앞에 아저씨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말했다. "아 저기는 우리하고 다른 동네야 아무튼 여기서는 안돼!" 군 부대 앞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 우리가 설 곳은 없었다. 


화장실 근처에서 장사하려고 해보았지만 쫓겨났고, 주차장 구석에서 장사하려고 했지만 또 쫓겨났다. 여기서 쫓겨나고 저기서 쫓겨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한참을 걸어 도로변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지나가는 차만 있을 뿐 사진 찍을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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