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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수고했어 오늘도

인사동 쌈지길에서 다시 시작한 사진 장사

군부대에서의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생각했다. 이제 어떡하지. 남산타워에서 장사도 쫓겨나고, 두번째로 생각했던 남대문 신세계 백화점 앞도 조명 때문에 인물 사진이 잘 안 나오고, 군부대는 텃세가 너무 심할 뿐더러 수익률이 너무 낮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만 하고 있을 때 생각이 든 것은 일단 나가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다. 어디로 가야할까. 생각하다. 그리스에서 온 엘렌을 데리고 갔던 인사동이 생각났다. 당시 김포에 살고 있던 나는 5호선 지하철을 타고 그대로 종로 3가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낙원상가를 지나 인사동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희망적이었다. 인사동 어디서 사진을 찍어야할까 고민하면서 쭉 걷고 있는데 인사동 쌈짓길이 보였다. 나는 노란색 문양의 쌍 시옷 글자가 보이는 그 길로 들어갔다. 내부에서 사진을 찍고자 하니 사진을 찍기엔 자리가 너무 좁았고 바로 쫓겨날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남산타워에서도 남산타워 안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었다. 그래서 나는 노란색 쌍 시옷이 보이는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DSLR을 가져와서 플래시 노출금지모드로 사진을 찍고 조리개 값과 ISO값을 보았다. 대충 이정도 밝기에서 찍으면 사진이 찍히겠구나를 계산해보고 폴라로이드 사진으로도 샘플 샷을 찍어보았다. 꽤 훌륭한 퀄리티의 사진이 나왔다. 해가 떠있을 때부터 캄캄한 밤이 되기까지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밤이 되자 조명이 켜지고, 조명을 받은 사진은 더욱 예쁘게 나왔다. 어두울 때 더 예쁘게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몇번의 답사를 다녀와서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친구들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가게 주인이 여기서 장사하면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딱히 제제를 가하지는 않았다. 길거리 공연, 음식, 사진 같은 이벤트 요소들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길거리에서 BIG이슈 잡지(노숙인들이 파는 잡지로써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잡지)를 파는 아저씨가 자기와 너무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블루투스 미니 스피커를 틀고서 장사를 시작했다. 굉장히 떨렸다. 부끄럽기도 했다. 개미만한 목소리로 장사하고 있는데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부끄러운가?' 부끄러울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도전해놓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는 당당했다. 내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여행이라는 목표를 두고 달려가는데 공부도 하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의 근원을 찾아가서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자신감을 찾아왔다.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드립니다. 찍으면 바로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드려요."

장사는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모은다고 사람들이 줄을 서자 손님들은 그 뒤로 구름떼 같이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잘 안나와도 원래 이런 것이라고 우기고 싶기도 했다. 시간이 돈이고 사진이 돈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장사는 눈 앞의 이익을 추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데 진솔함이 빠질 수는 없는 법. 나는 사진이 잘 나올 때까지 사람들에게 찍어주었다.


세명의 친구들이 가서 목이 쉬도록 홍보를 했다. 한명이 지치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로테이션으로 목소리를 내고 화장실에 갔다. 혼자서 하는 장사보다 확실히 여러명이서 하는 것에서 오는 장점이 있었다.


처음 쌈짓길에 와서 사진을 찍을 때는 쌍 시옷이 보이는 곳에서 정면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한 친구가 정면이 아닌 사선에서 찍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 수도 있고 사진도 예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듣고보니 그랬다. 친구의 의견대로 하니 수익률도 올라갔다. 여러명이 모이니 의견과 아이디어도 여러개가 됐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가기전에 우리는 인사동 옆에 있는 삼청동을 갔다. 삼청동에는 거리의 악사들과 노점상들이 보였다.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가판대에 놓고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의 모습 같지 않았다. 추운 날 꽁꽁 언 손을 녹이며 장사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날 번돈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모자에 팁을 넣었다. 나도 쥐뿔도 없었지만 돈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노래는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였다.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 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 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출처 네이버 뮤직 가사)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날 번 돈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와 오늘 돈 많이 벌었다. 이렇게 잘 될줄 몰랐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칼국수 사먹으니까 엄청 맛있네. 서로가 파김치가 된 얼굴로 말하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칼국수를 다 먹고 나와서 삼청동 길을 걸었다. 우리는 경복궁 벽을 지나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고 나서 우리는 서로 인사했다.


'수고했어 오늘도.'


꺼질 것 같았던 폴라로이드 장사의 불씨는 그렇게 다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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