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by 서장석

지난 오십 년간 만난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나서 여태껏 서로 만나며 살고 있다. 일 년에 두, 세 차례 부부 동반으로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얼굴도 보고, 건강과 일상을 묻고 이야길 주고받으며 지내 오고 있었다. 단지 그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사람은 살면서, 더더군다나 나이 먹어 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자녀가 대학 갈 나이가 되면 어느 대학에 갔느냐고 물어보지 말아야 한다.

본인의 자녀가 뜻대로 좋은 대학에 갔으면 묻지 않아도 스스로 좋아서 발설할 것이기 때문에,

아니면 질문했을 때 서로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두 번째는 졸업할 때가 되고, 취업할 시기가 되면 어디에 취업했느냐고 묻지를 말아야 한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에 취업했을 경우 입이 간지러워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취업을 못하였거나 중소기업에 입사하였을 경우 대부분의 부모가 설명을 망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경우 대기업 취직이 인생 목표일 정도로, 취업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기업에 취직 못 하면 인생 루저 취급을 할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랴. 물론 대기업에 취업함으로써 받는 혜택은 일반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임금과 복지가 뛰어나기 때문에 서로 가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세 번째는 혼인과 자녀 출산에 관해 질문을 삼가야 한다. 작금의 자녀 세대는 우리가 젊을 때 살던 시대와는 생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가 젊어서 살던 시기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아니한 것들이 되어 버렸고, 질문 자체가 금기시되어 버렸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시대, 나이 먹은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재작년 오월쯤 전화로 연락하여 우리 집 근처에서 부부 동반 모임을 하기로 하고 식당을 예약하였다. 서로 오랜만에 만나서 안부를 묻고 친구 와이프에게 왜 갑자기 얼굴이 예뻐졌느냐고 실없는 농담도 하며 회포를 풀고 있었다. 살아가는 고단함도 함께 빠지지 않고 오르는 단골 메뉴. 서로 술 한 잔씩 하며 주흥이 무르익을 무렵 한 친구가 아들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 H 그룹 계열사에 취업하였다고 자랑한다. 우리는 일제히 커다란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대학 재학 중에 자격증을 몇 개를 따고, 토익 공부하여 좋은 점수를 받는 등의 노력했노라고 친구 와이프가 거든다.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친구 아들이 내 아들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얼마나 기쁘냐고 악수하며 축하해 주었다. 내 집사람이 축하한다고 하면서 저녁 사라고 부추겼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이후 사달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중 느닷없이 친구가 내 아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안부를 묻는다. 의례적인 인사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집요하게 아직도 계약직이냐고 재차 묻는 것 아닌가. 순간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고 내 대답은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치 못 채고 또 묻기에 내가 아들 이름을 대며 전화해서 바꾸어 주랴 하니 그건 아니란다. 제 아들 자랑하는 것까지야 꼴이 사납더라도 넘어가 주겠지만, 남의 아들을 건드리며 아픈 손가락을 건드리는 행위는 차마 용납이 되질 않았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더니 이 꼴이 그 꼴이다. 친구의 빈정거림에 마음이 상해서 화가 났다. 친구 녀석의 행위와 말 표현에 화가 났고, 내 아들의 사회적 처지에 화가 났다.


모임을 끝내고 화의 화살이 마누라에게 향했다. 당신은 애가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받침도 하고 엄마로서 잔소리도 했어야지 무사태평하게 아들 하는 대로 놔두냐고 한바탕 퍼부어 댔다. 당연히 분위기가 냉랭해졌고, 우리 부부는 며칠 동안 서로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지냈다. 일주일 후 아들에게 전화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일 년만 다시 공부하라고 그래도 안 되면 아빠도 기대를 접고 포기하겠다고 말하였다. 아들 하는 말. 지시하시는 것이냐고 되려 묻는다. 아니라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답해 주었다. 아들의 답은 의외였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힘이 들었단다. 그래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기로 했다고 덤덤히 말을 이어간다. 순간 알면서도 말문이 막힌다. 공부하면서 받은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면 저리 말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이 지나면 사회적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하는 조급증도 같이 생겨났다. 물론 자신이 제일 많이 힘이 들 것이다. 저렇게 말하기까지 많이 고민했겠지.


마누라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들에게 시간을 주라고, 기다려 주라고. 내가 답했다. 안타까워서 저 젊은 나이에 누리고 살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살아야 할 날들이 또 얼마나 많은데······ 아내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네 인생이니까. 네가 결정해서 살려무나. 어머님이 자식 겉을 낳지, 속을 낳은 것은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내려놓자. 이 또한 욕심이려니 하고 생각하자. 마음의 동요를 내려 앉히기 위해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가끔 하던 전화마저 뜸해졌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단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에 대고 한 참 퍼부어 버릴까 하다 이내 참았다. 나이가 얼만데 그것도 모르냐?


친구 녀석의 오지랖으로 인한 폐해가 거의 몇 년 동안 이어졌다. 머릿속에서 녀석이 이야기했던 내용을 지우려 부단히 애썼다. 앙금이 가라앉혀지지를 않는다. 오래간다. 왜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이 풍파를 만들어 놓았는가 원망스럽다. 동시에 나 또한 타인에게 필요 없는 관심으로 근심과 걱정을 주지 아니하였는가? 반성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눈 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