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초복도 지나갔다.
지난 3월 초부터 갈 곳이 없어 쉬기 시작했으니 벌써 다섯 달이 되어 온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오래 쉬게 될 줄은. 가지고 있는 기본 역량이 있으니 금방 다른 자리를 찾아 계속 일할 줄로 예상했는데 벌써 반년이 되도록 집에서 쉬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다. 경제 사정이 너무 좋지 않은 여파가 제일 크다. 또한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한 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좋아하는 책 읽기를 하고 글쓰기 공부도 하고 독서클럽에 가입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독서하는지 그리고 독서할 때의 주의 사항은 무엇인지 등도 알게 되었다. 좋은 강사님과 동료들을 만나서 일주일 동안 읽은 책 내용을 설명과 서평을 통해 교류한다. 카톡으로 읽은 내용 중 마음에 와닿은 문장을 공유하기도 하는 알찬 모임이 대단히 만족스럽다. 수업 내용과 진행이 매우 정성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쉬면서 제일 잘한 일은 글쓰기 강좌 신청하고 독서 모임도 하며 매주 각각 두 시간씩 수업을 듣고 속살을 찌우는 일이었다.
수업 장소가 집에서 멀다. 갈 때는 집사람이 운전해 주어 승용차로 간다. 올 때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2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보는 재미와 노선을 지나면서 스치는 주위 풍경을 감상하는 쏠쏠함도 덤으로 준다. 버스는 융, 건릉을 지나 용주사를 거쳐 온다. 사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곳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버스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정류장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오래전 방문했던 기억도 같이 올려 옛 생각이 나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용주사로 소풍을 와서 노송이 서 있는 장소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소풍 갈 땐 최고의 선물이 칠성사이다였다. 지금처럼 캔으로 된 제품이 아니라 병으로 된 것으로 뚜껑을 따야 마실 수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께 부탁해서 뚜껑을 따달라고 하면 됐는데 어려서, 선생님이 어려워서 부탁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도로 가져왔던 추억의 장소였다. 그때는 선생님이 왜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만 들었는지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금 돌아보면 어이없는 일이란 생각이다. 하나 더 붙여 보물 찾기를 했다고 기억되는데 단 한 번도 보물을 찾아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추억의 장소를 매주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수업이 재미있다. 강좌 참석자들은 나를 빼곤 다 여자분들이다. 여자분들과 같이 앉아 무언가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또 한 번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백인백색이라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쓰는 글쓰기라도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처음부터 독서와 글쓰기 강좌를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쉽사리 자리가 나질 않았고 시간은 흐르고 알음알음으로 강좌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직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와 강좌 신청을 하여 잠시 구직 활동을 멈출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게 되었고 강의를 듣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지금의 결정을 두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너무 소중한 경험이고 좀 더 젊은 날에 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거라고 한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기회가 되어 들을 수 있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글을 쓸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랴. 좀 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당장 먹을 게 없어 굶는 것도 아니다. 학비를 주어야 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바심을 멀리 던져 버리고 여유를 가질만한 나이도 되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니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육체적 나이만 먹고 정신 연령은 초등학교 5학년 용주사에서 뚜껑 못 따서 사이다를 그냥 가지고 왔던 때를 못 벗어난 것 같다.
그동안 학습하고 배운 것들로 마음을 다스리고 어른으로 살 줄 알았는데 부끄럽게도 아직 먼 것 같다. 얼마나 더 익어야 땡감을 벗어나서 익은 감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 되는 인간이 될까? 수업은 8월 말까지다. 아직 한 달 남았다. 소중한 시간을 자신의 성장을 위해 쓰고자 노력하려 한다. 덥다. 더위가 한반도 상공에 머물러 금주와 다음 주까지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 여름밤 잠을 깊은 잠을 방해할 거란다. 더위와 추위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진다.
어릴 적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도 손부채 하나로 등목 하며 여름을 지내왔는데 모든 걸 갖춘 지금이 더 더위에 취약하여 지내기 쉽지 않다. 8월 한 달 지나고 추석이 오면 이 더위도 물러가겠지.
세상의 순리가 그런 걸 알면서도 견디기 힘들다고, 덥다고 아우성친다. 그렇게 육십 년을 넘게 살면서 순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몸은 이제 노인으로 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더위가 가고 서늘한 시간이 오면 일자리 기회도 같이 오리란 기대와 함께 올해의 여름을 보낸다. 그래도 덥다.
202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