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되거나, 내쳐지거나.

by 서장석

한 달 전 새로운 직장을 얻기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2025년 7월 18일 전화가 왔다.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인터뷰를 하자고 한다. 그날이 오늘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 샤워 면접을 위한 옷차림과 손수건, 안경과 수첩을 준비하고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담아 영통역으로 출발하였다. 면접 장소는 지하철 3호선 매봉역 근처. 영통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으로 환승, 양재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매봉역 4번 출구로 나가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열고 목적지를 입력하니 바로 화면에 뜬다. 만일 앱이 없었다면 요즘 세상에 누구에게 묻고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문명의 이기다. 혜택을 여실히 보고 있다. 약 70m 정도를 걸어갔다. 목적지가 나온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근처를 둘러보니 카페가 보인다. 커피를 부탁하고 차가 나오자 언제나처럼 코로 향부터 맡는다. 따뜻한 커피가 식도로 내려간다. 창밖의 사람들을 본다.

9시 30분 정도였는데 대부분 직장인이 들고 다니는 것은 아이스아메리카노였다. 나처럼 더운 날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약속 시간이 되어 면접 장소로 향했고, 담당자와 1차 면접을 갖는다. 면접자의 신상 소개가 끝나고 회사의 능력과 지난 실적 그리고 향후 계획까지 회사에 대한 대략적 소개. 도곡동 타워팰리스 건물을 설계하였다는 설명이 있었다. 잠시 후 대표의 2차 면접, 중요한 연봉 관련 질문과 실무적인 질문이 오가고 면접이 종료되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담당자가 오후 2시쯤 통보를 해 주겠다고 한다. 대표 면접은 2명이 같이 봤는데 2명 중 1명만 선발될 거라고 이야길 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알겠다고 답하고 나니 갑자기 인형 뽑기 상자에서 뽑히길 기대하는 인형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이제껏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해 왔던 일인데 이 행위가 낯설게 느껴짐은 어찌 된 일인가? 잔인하다 못해 비인간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경쟁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과정과 절차지만 무언지 모를 찝찝함이 머릿속을 맴돈다. 젊었을 때 당연하다 여겨지던 것들이 갑자기 어색하고 어줍게 느껴지는지 갑작스러운 변화가 혼란스럽다. 통보를 기대하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소변이 마렵다. 공연히 연봉을 세게 불렀나 하는 기우가 고개를 든다. 어차피 끝난 일인데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무슨 도움이 되랴. 어떤 면접이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지만 어렵다. 나이를 먹어도 면접은 어렵다.

서울에서의 볼일이 끝나 다시 매봉역에서 양재역으로 그리고 정자역으로 갈 때의 역순으로 되짚어 오기 위해 지하철에 올랐다. 양재역에서 환승을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앞사람이 여자분이었는데 종아리와 엉덩이가 보인다. 눈을 감지 않는 이상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명의 이기가 관음증을 조장하거나 방기하고 있다. 물론 내 뒷모습 또한 뒷사람이 보고 있을 것이다. 문득 어제 유튜브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라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짧은 영상이었다.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앞사람이 뒤돌아서며 방귀를 뀌고 가스가 커피 위를 스치면서 잔물결이 일어나는 영상이었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사람의 엉덩이를 보는 순간 기억이 되살아났다. 만약 앞사람이 방귀를 뀐다면 바로 내 코로 직행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실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앞사람이 알지 못하게 설령 안다고 해도 따질 수 없게 만들어진 구조 앞에서 들키지 않고 볼 수 있음이 다행이다.

서울에 얼마나 많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며 종일토록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어떤 일도 없는 듯 시간이 가고 장소가 바뀐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누군가에겐 의미가 되고, 또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 되는 세상에 살면서 혼자만 실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수인분당선 정자역에서 잠시 기다림이 필요했다. 벤치를 찾아 걸음을 옮기고 자리에 앉았다.

12시 가까운 시간이어서 붐비지는 않는다. 올 때는 출근 시간이어서 승객으로 가득했었는데

돌아가는 길은 한산하다. 이윽고 지하철이 도착하여 실내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역시 승객의 8할이 여자들이다. 대한민국 낮 경제의 주관자는 단연코 여성이란 생각이 든다. 드문드문 나처럼 남자 승객들이 보이긴 하지만 버스도 그렇고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인 듯싶다.

망포역에서 하차하여 3번 출구에 있는 OO 서점으로 들어갔다. 덥기도 하고 땀도 식힐 겸 베스트셀러 가판대를 둘러보았다. 요즈음 신작으로 뜨고 있는 소설류들과 에세이를 살펴보았다. 만일 내가 쓴 책이 저들 가운데 버티고 있었다면 하는 망상이 솟구친다. 부럽다. 글쓰기에 나이는 상관없는데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는 데 신경 쓰느라 하고 싶은 것들을 제쳐 놓고 살았다. 어느 정도 살아보니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매일매일 몇 자씩이라도 써 가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혼자 중얼거려 본다.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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