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토요일 월례회가 있는 날.
새벽 모임이어서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목이 말라서 깨 보니 2시밖에 되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이른 아침을 맞기로 했다. 머릿속을 맑게 해주는 데는 샤워가 제일이라 속옷을 훌훌 벗고 부스로 들어간다. 온도 조절을 하고 머리부터 들이민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비누칠하고 다시 물로 세정하고 맨 나중엔 냉수를 틀어 냉수욕한다. 찬찬히 몸의 물기를 닦아내니 한결 시원하고 상큼한 기분을 얻을 수 있다. 옷을 갈아입고 암막 커튼을 열어 아침 공기를 마신다. 아뿔싸 비가 오고 있다. 그것도 장대비가 오고 있다.
오늘 일이 걱정되어 날씨를 검색하고, 어찌 되었든지 약속은 약속이라 생각하고. 아직도 시간 여유가 있어 어제 읽던 도서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1984》 조지 오웰의 작품, 독서 모임의 추천 도서였다. 어렵다. 단 한마디로 무척 어렵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조지 오웰은 천재 아니면 돌머리가 아닐까? 동의 반복어를 계속 구사해 가면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앞으로 전개를 이끌어 가는 걸 보면 범상한 인간은 아닌 듯싶다. 새벽 4시 10분 골프 백과 보스턴 가방을 메고 출발하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가자 세찬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고 어둠 속 잔영들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반사되는 빗방울이 명멸하며 앞뒤로 다가서고 멀어진다. 선배 집 근처에 이르러 문자 보내고 – 도착했다고 – 시동을 끈다.
차 지붕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며 각종 화음을 내고 있다. 툭 툭 두두둑 하며 비가 들려주는 소리가 다양한데 이유는 나무 아래에 주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로 직접 떨어지는 소리와 나뭇잎이 빗방울을 그러모아 체중을 불려 두드리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인데 얘들도 각자의 몸무게가 달라 그런 소리를 내며 화음을 맞추어 간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소리다. 소리와 소음이 다른 것은 싫증 나는 가의 여부인데 자연이 내는 소리는 아무리 오랫동안 듣고 있어도 싫증이 나질 않는다. 자동차 소리,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 좁은 실내 공간에서 떠드는 소리는 소음이다. 사람이 내는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유아원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아닐까? 이마저도 오래 들으면 싫어질까?
선배의 차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식당을 향해 출발하였다. 비 오는 도심 그것도 새벽의 도시는 사물 모두를 집어삼킨 듯 적막하다. 가로등 불빛마저 없으면 시멘트 무덤이 모인 공동묘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이라 차도 없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우리만 신호를 지키며 도로를 달려간다. 지나간 한 달의 경과를 서로 묻고 답하고 필요한 또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운다. 가는 중에 의견이 맞는 부분이 있으면 웃고 다른 의견이 나와 충돌이 발생할 경우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강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도 똑같다. 이것은 이해충돌은 아닌데 일종의 자존심 대결이라고 할까. 조금 빨리 운전하시라고 재촉한다. 말하면서 가다 보면 운전 속도가 너무 느려진다. 세상에 시속 55km가 뭐야! 아무도 없는 뻥 뚫린 도로에서 재촉하면 조금 빨라지고, 느려지는 반복 속에서 식당에 도착했다. 회원들 모두 우리보다 먼저 와서 식사하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눈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선지해장국을 주문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을 총무님이 설명한다. 일단 클럽에 가서 운동할 사람과 취소할 사람을 나누고 팀을 새로 짜자고. 출발하여 클럽하우스에 도착하여 사전 공지대로 이야기하자 한 명만 빼고 전부 라운딩 하기로 한다. 요즘 클럽하우스는 접수대에서 접수하는 게 아니라 키오스크로 진행한다. 얼굴 인식 시스템에 접속하면 바로 라카 번호가 뜬다. 가서 환복하고 준비하면 끝.
비가 와서 많은 팀이 경기를 취소하여 필드가 한적하다. 카트에 탑승했을 때만 해도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막상 첫 홀 티샷 할 때는 비가 그친다. 아침 7시 티업 시작. 아무리 사전 운동을 해도 경직된 몸이 유연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첫 홀은 무척 신경 쓰이는 홀이다. 공이 떨어진 지점에 물웅덩이가 되어 볼을 옮겨놓고 세컨드샷을 한다. 디딤발의 위치가 볼보다 낮아 볼 치기가 좋은 건 아니다. 골프는 평탄한 곳에서 치는 경우는 티박스 이외는 없다.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첫 홀은 더블 보기로 끝내고 네 번째 홀 파3에서 파를 하고 나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팀원들끼리 의견을 묻고 계속하기로 한다. 한 홀 더 진행하는데 천둥과 번개까지 쳐댄다. 총무님과 회장님이 그만하자고 연락이 왔다. 천둥, 번개까지 와서 위험하다고 그만하잔다. 비 오는 필드를 돌아오면서 잔디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무리했다. 새벽같이 와서 온 정성으로 계속하려 하였으나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이어가려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뻔했는가? 다들 식당에 모여 근황 토크가 한창이다. 다들 맥주 한 잔씩 앞에 두고, 난 커피를 리필하여 따듯함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계속하여 비가 오고 있다. 쉽사리 그칠 비가 아닌 것 같다.
귀가하면서 차 창밖 초록으로 가득한 논들이 보인다. 지금 오는 비는 농사를 위해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넘치면 대처가 어려워진다. 모든 이치가 그렇다.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말씀대로 전부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나이를 먹은 만큼 따라가려 노력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육체적으로 늙어가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조심하고 어려워지는 것들이 더 많다. 그중의 대표적인 것이 말 줄임이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했다는데 말이 먼저 나와 민망할 때가 많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생각의 문을 열고 한 뼘 더 자라야 할 때다.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