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인지 성토장인지

골프 잔상

by 서장석

한 달 전에 예약했던 라운딩 날이다.

친구네와 부부끼리 충주에 소재한 골프 클럽을 향하고, 약 한 시간 후 클럽하우스 도착.

라커룸에 가서 짐을 풀고, 2층으로 올라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난 황태해장국, 아내와 친구 와이프는 비빔밥을, 친구는 우거지 해장국을 주문하고 물을 따라 목을 축인다.

잠시 요즘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주문한 식사가 나온다.

늘 먹어도 깔끔하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차려진 밥과 반찬, 그리고 어쩜 그렇게 맛나게 국을 끓여 손님상에 올리는지 내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이지만 감사하고 감사하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한 자락 하면 클럽하우스 세프 하려면, 고급 호텔 조리장이나 세프 정도 경력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골프 클럽 음식은 비싼 게 흠이지만, 아내 앞에서 맛나고 값나가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는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식당 밖으로 보이는 페어웨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녹색 잔디가 물결을 이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내와 친구 부부에게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친구 부부와 아내에게 각각 만 원씩 핸디를 주고, 내기해서 재미있게 운동하자고 말하니, 다들 수긍한다. 단 미리 약속해서 물웅덩이를 만나면 남편들이 대신 건네주자고 말해 주었다. 클럽하우스를 나와 보니 우리가 이용할 카트가 눈에 보인다. 캐디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고 이름표를 보니 정숙 씨란다. 라운딩 코스로 출발.

남자 둘이 우선 티박스에 올라가서 타구를 날렸다. 약 20미터 전방에 레이디티가 보인다.

여자분 두 분의 첫 티업.

친구 아내의 타구가 두 번째 샷 하기에 곤란한 지역으로 날아갔다. 집사람의 경우 원래 비거리가 나질 않아서 별로 신경 쓰질 않았다. 친구가 잽싸게 달려가서 제 안사람의 볼을 치기 쉬운 곳에 놓아준다. 야 반칙이야!

내긴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볼멘소리를 하자 친구가 씩 하고 웃음으로 때운다. 집사람 왈 남자가 쩨쩨하게 그런 것 갖고 따진다고 한 소리 한다. 내가 잘못한 것 아닌데 규정대로 하잔 것뿐인데. 약간 심통이 났다.

친구 아내가 친 볼이 또 엉뚱한 곳으로 가자 친구의 친절함이 극에 달한다. 집사람은 친구의 동작을 보면서 부러웠나 보다. 내게 당신은 뭐 하는 거냐고, 친구의 다정다감한 행동을 보면서 반성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면박 준다. 한술 더 떠서 친구가 제 아내보고 ❛이 여사 이 여사❜ 하며 익살을 떤다.

그래 젖은 채로 놔두자. 말린다고 될 행위가 아니다.

아내가 볼이 맞지 아니할 때면 와서 봐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백스윙이 커서 골프채를 끌고 내려오질 못하니 볼을 오른쪽 앞에 두고 하프 스윙하라고 조언한다. 맞아 나가기 시작한다. 몇 홀 지나지 않아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다시 묻고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짜증이 난다. 머리는 어디에 쓰냐고, 생각하면서 볼을 치라고 말하자마자 분위기 급강하, 앗 참을 걸 입이 방정이야. 그때부턴 어떤 것도 소용없다. 도대체 왜 돈 들여 공은 치자고 했으며 이 분위기 어떻게 수습할지 막막해진다.

어르고 달래서 18홀을 끝내고 넷이 저녁을 먹었다.

웬걸 식당에서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친구 아내가 자기 남편을 무참하게 깐다. 속에 담아두었던 그간의 이야기를 숨 가쁘게 털어놓는다. 백 퍼센트 수긍이 가더라도 이것은 아니지 않나 싶은데, 제지하지 않으니 끝없다. 친구의 머리가 식탁 밑으로 내려가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남자들이 불쌍하다. 죽을죄를 지은 것 아닌데, 이 땅의 남편들은 자기 아내에게 입도 뻥긋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좋은 의미로 시작된 운동이 변질되어, 아내들이 남편 성토하는 성토장이 되어버렸다. 묵묵부답. 유구무언. 젊어서 한 일이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어쩌겠는가.

원 세상에 돈 쓰고 욕먹고, 인생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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