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덕목

by 서장석

라운딩 전날은 늘 설렌다. 약간의 흥분, 살짝 잠도 설친다.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인데, 구력이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이런 것이 정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속한 월례 모임의 이름은 소나무다. 소중한 나눔을 나누고 무궁한 발전을 이루자는 뜻이란다. 모임이 만들어진 지 십 년도 넘었다. 회원 수 이십여 명. 동종 업계의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안부와 경조사에 십시일반 서로 도움을 주자고 마음을 모아 모임을 결성하였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이 월례회 날. 티업 시간이 열두 시 삼십 분. 팀 수는 네 팀.


열한 시에 모여 서로 악수하고 안부 인사를 한 후에 이른 점심을 먹는다. 다슬기 해장국. 총무님이 식사 중 오늘 일정을 설명하고, 상품 내용을 설명한다. 성적 우수상, 니어리스트, 롱기스트, 행운상, 그리고 찬조 물품의 배분까지. 식사 후 클럽으로 향했고, 옷을 갈아입고 커피 한잔을 뽑아 카트에 올랐다. 첫 홀 티박스 앞에서 몸을 이완시키는 스트레칭, 순서에 따라 티박스로 각자의 드라이버를 가지고 이동. 모든 운동이 처음이 중요하다. 골프도 첫 홀의 중요성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티 위에 볼을 올려놓고 드라이버를 가지고 어드레스를 신중하게 한다. 오른 다리, 왼쪽 다리로 체중 이동하기, 머리 들지 않기, 어깨 힘 빼기를 위해 헛스윙을 해 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하는 것이 맞다. 순서에 따라 티샷. 두 번째 샷을 위해 카트로 이동한다. 드라이버, 두 번째 샷, 온그린 후 퍼터. 늘 순서는 같다.

오늘은 스윙이 부드럽다. 전략과 전술은 머리로 하고 스윙은 몸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동안의 연습으로 몸에 익어 나오는 스윙이야말로 최상의 구질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컵 옆 삼 미터 지점에 볼이 안착되어있다. 약간 내리막 경사. 버디 찬스. 아드레날린이 올라온다. 동반자들도 다들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순서대로 퍼팅하고. 맨 마지막에 퍼팅.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기회를 획득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난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것저것 신경 쓰다가 홀컵 일 센티미터까지 붙이곤 볼이 더 이상 구르질 않는다. 발을 굴러 더 굴러가도록 진동을 주어 본다. 물론 구를 리가 없지마는. 실망스럽다. 버디를 놓치고 실수를 잊어버리려 노력하였다. 당연히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여파가 두, 세 홀 간다.


전반 9홀이 끝나고 두부김치와 막걸리 한잔하기 위하여 그늘집으로 들어간다. 다들 버디가 아까웠노라고 한 마디씩 한다. 그래도 전반 스코어 북에 표시된 성적이 괜찮다. 투 오버란다. 회원들이 와서 다 같이 물어본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왜 안 하던 성적이 나오느냐고. 나는 집에 일이 있어 골프로 자위하기 위해 그랬노라고 허풍을 떨었다. 이것으로 자위하면서 막걸리를 들이켠다. 목으로 넘어가는 막걸리 맛이 청량하다.


잠깐의 휴식.

캐디가 후반 홀 진행하자고 부른다. 잘 된 스윙의 느낌을 살려야 한다. 후반 첫 홀이 중요하다. 초구의 중요성은 새삼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티박스에 올라가 티샷. 어라 이게 아닌데 스윙을 잊어버렸다. 막걸리 한잔했을 뿐인데 갑자기 머리가 헝클어진다. 멀리건을 받아서 다시 티샷. 리듬이 깨져 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카트 타고 이동. 슬며시 긴장이 몰려오고, 동반자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표정 관리도 하고.


후반 첫 홀을 마치고 짧은 파 3, 첫 홀 결과로 인해 순서가 세 번째로 밀렸다. 앞에는 연못, 우측 벙커, 좌측은 숲이다. 핀은 벙커 턱 위에서 깃발이 날리고 있다. 안전하게 그린 왼쪽을 보고 티샷 한다. 클럽을 너무 당겨 쳤다. 홀컵에서 너무 멀다. 약 20미터 홀 근처에 붙여서 파를 하는 것이 목표다. 골프에서 쉬운 것은 없지만 롱 퍼트 또한 부담이 심하다. 온 그린인데 온그린이라 말할 수 없는 묘한 아쉬움. 내리막 퍼팅이어서 홀컵을 지나쳐 버린다. 옆에 붙여 보기로 마무리했다.


후반이 심상치 않다.

의도한 대로, 전반만큼 샷이 부드럽지가 않다. 머릿속에 지진이 난다. 전반에 모아 놓았던 돈이 모래알 빠지듯 빠져나간다. 잠시 맡아 놓겠다는 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지갑을 열어 창고를 개방해야 할 판이다.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핸디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다고 하던가? 도로 원위치. 친구가 위로를 건넨다. 그런데 위로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조롱으로 들린다. 내 정신 상태가 원만하지 못한 탓인데,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


오늘도 골프를 치면서 몇 수 배운다. 잘될 때 건방진 행동하지 말고 겸손하며, 안될 때 낙담하지 말고 원인을 분석하고 주위의 조언과 도움을 구하며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나이 먹어도 못 고치면 나잇값 못한다는 소릴 들을 테니 자중하고 자애하자. 공감과 배려와 인정 세 가지가 나이 먹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골프 덕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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