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잡아먹는 鬼神( 귀신 )

by 서장석


혼자 갈 때가 많다. 카페를.

비 오는 날이면 더 그렇다. 한낮에 심심할 때도 그렇다. 빈손으로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 한 권을 갖고 간다. 가끔은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도 한다.

평일 늦은 오후, 카페는 한가롭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비 오는 날엔,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창밖을 오래 바라본다.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가 흩뿌리는 흙탕물, 거리의 우산들. 이런 날엔 책도 필요 없다.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생각을 비우고, 귀만 열어둔다. 창을 두드리는 빗줄기.

가끔은 천둥, 번개까지 찾아온다. 그런 날은 비바람이 유난히 거센 날이다.

맑은 날은, 커피를 옆에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바라본다.
지붕과 지붕을 잇는 선들, 비슷한 듯 다른 모양들을 들여다본다. 도시는 건물로 가득하다.
벽돌 같은 건물들이 시야를 막는다. 하지만 단독 주택이 모여 있는 골목의 카페는 다르다.
하늘이 조금 더 넓다. 생각도 조금 더 넓어진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라도 그 폭만큼의 하늘을 내게 허락해 준다. 내게 호의를 베푼다.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20분, 30분은 순식간이다. 그것이 카페의 매력이다. 나는 카페에서 시간을 재지 않는다. 시계가 걸린 벽과는 등을 진다.
손목시계도 차지 않는다. 휴대폰은 주머니 깊숙이 넣고, 그저 앉아 있는다.

직장도 일도 없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 없다.
시간은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똑같이 흐른다. 하지만 은은한 음악과 적당한 소음이 있는 이곳은 시간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내가 가는 카페 대부분은 2층이나 3층에 있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
비 오는 날엔 잿빛 하늘을, 맑은 날엔 밝은 하늘의 표정을 읽는다.
오늘은 잔뜩 찌푸린 얼굴, 가을을 재촉하는 비를 뿌리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세월이 간다. 그리고 계절이 바뀐다.

젊은 날의 감성과 지금의 감성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세파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으니.

카페에 혼자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설령 이곳이 시간을 잡아먹는 귀신이라도.

어쩌면 오히려 괜찮다. 그 귀신 덕분에 흘러간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과 추억을 꺼내 마음에 담을 수 있으니까.

무채색 하늘이 흘린 눈물이 비요. 내린 비로 내 마음을 씻는다.
내 안의 부끄러움을 닦아내듯 창문에 빗방울이 흐르고 맺힌다.

혼자라서 느낄 수 있는 정서. 귀신이 알려준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간다. 귀신을 만나려고······.

keyword
이전 01화카페의 존재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