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후 2시 50분, 나는 어김없이 카페에 간다. 집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는 방문객이 많지 않아 한산하다. 나는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결제를 마친다.
전용 카드에는 잔액이 600원 남아있었고, 미리 준비한 100원 동전을 더하고 나머지는 카드로 결제했다. 카페는 1층이 매장이고, 2층과 3층은 손님들의 휴게 공간이다. 매니저가 커피가 나왔다고 알려 주어 받아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긴 책상이 놓여 있어 노트북을 가져온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고, 1인용 탁자와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혼자 온 손님도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통창을 마주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검고 쓴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왜 사람들은 돈을 내고 이렇게 쓴 커피를 마시냐고 묻는다면, 기호품이라서, 습관이라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 조금 궁색하다. 다음에는 더 근사한 대답을 생각해 봐야겠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트북을 켠 젊은이 두 명과, 내 또래로 보이는 남성 세 명, 사십 전후의 여성 세 명이 자리하고 있다. 한 젊은이는 실반지를 낀 왼손 검지를 볼에 대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나비 밴드로 질끈 묶은 모습이 눈에 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제물을 준비할까, 아니면 인터넷을 서핑할까 궁금하다. 다른 한 명은 식곤증에 시달리듯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다.
육십이 넘어 보이는 남성 세 명의 대화가 내부에 찌렁찌렁 울린다. 한 명의 전화벨이 울리고, 벨 소리 또한 크다. 내용은 전 직장 동료와의 대화인 듯하지만,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변에 공유된다. 다 같이 공간을 쓰면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아쉽다. 전화가 끝나자,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오른쪽에는 주부로 보이는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사람은 체격이 좋고, 다른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홀쭉하다. 창 쪽에는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여성이 앉아 있다. 체격이 좋은 여성이 남편과의 스킨십이 뜸하다고 하자, 안경 쓴 여성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스킨십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자 동반자들이 놀라고 부러워한다.
나는 귀를 닫고 시선을 통유리 너머로 옮긴다. 파란 하늘과 흰색 아파트 벽이 조화를 이루고, 길 건너 샤부샤부집 주차장으로 바람이 모인다. 길가 가로수 새순이 팔랑거리고, 음식점 뒤로 교회 십자가와 피뢰침이 보인다. 빨간 기와지붕 위로 한낮의 햇볕이 무심히 내려앉는다. 카페 안에는 음악이 흐른다.
사람 사는 게, 나이와 경험이 조금씩 다를 뿐, 비슷한 생각과 체험을 갖고 살아간다. 건너편 공터가 휑한 것처럼, 시간도 채움과 비움을 반복한다. 나는 그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시간을 보내고, 세월 가는 것이 삶이라면,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 젊음을 지나 장년기를 거쳐, 이제 막 나이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허전함이 있다.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잘 나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며, 뜨거운 커피가 주는 마력을 만끽한다. 카페는 오늘도 다양한 생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