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양도하기 위해 증권회사에 들렀고, 허리가 욱신거려 한의원에도 들렀다. 온열치료, 물리치료, 부항, 침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버스를 탔다. 승객 약 15명, 나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다. 평일 낮, 경제를 움직이는 세력은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차한 뒤 자주 찾는 HOLLY’S COFFEE SHOP에 들렀다. 늘 한결같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오늘은 할인쿠폰을 써서 조금 더 저렴하게 마실 수 있었다. 3분 정도 기다리니 매니저가 출고를 알리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듣기 좋다.
카페는 1층 매장과 2층 휴게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2층에는 약 60석 규모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내부는 검회색 벽돌로 천장까지 쌓아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에는 “Away from ordinary”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일상에서 탈출하라는 말이지만, 나는 오늘 그 일상 속 깊은 곳에 잠기고 있다.
조명이 은은하다. 다운라이트와 간접조명이 눈에 부담을 주지 않고, 철골 트러스 구조의 높은 천장과 나뭇가지처럼 내려온 조명이 조화를 이룬다. 구석진 자리에는 카공족이, 유난히 말소리 큰 테이블에는 30대 후반의 여성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소음을 발산한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홀짝이며, 낮에는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함을 알게 된다.
혼자 카페에 오면 나는 자연스레 관찰자가 된다.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주변을 살핀다. 창가 구석에서는 한 팀이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작은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케이크 위 빨간 딸기, 공갈 박수, 입 풍선으로 촛불을 끄는 모습까지 세심하다. 카페에서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불을 끄고 하는 모습을 보니 5, 6년 전 내 생일 때가 생각난다.
그날 식구들이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 아무런 생각 없이 혼자서 촛불을 껐다가 손자가 노발대발하며 난리가 났었다. 미안하다고 싹싹 빌며 사과하고 다시 초에 불을 붙이고, 식순에 따라 노래 부르고, 손자 혼자 촛불을 끄게 하고서야 진정되며 축하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손자의 그 능청스러운 연기 덕에 추억이 하나 더 늘었다. 더 웃기는 것은, 다들 케이크를 먹지 말란다. 할아버지 생일이니 할아버지만 한 조각 먹고 나머진 제집으로 가져가겠다고 해서 다시 초와 케이크 커팅 칼 등을 포장하여 손자의 손에 들려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 나는 한 장면이다. 즐거움이 배가 되었던 추억이다.
손자의 끌끌한 성격과 행동으로 인해 마누라와 아들, 딸 사위가 박장대소하고 웃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것을 ❝인생에 있어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라고 적었다.
오늘도 할리스에서 나는 소중한 기억을 되살렸다. 촛불을 끄는 배려와 케이크를 자르는 섬세함 속에서, 손자의 귀여운 행동 한 조각을 떠올렸다. 손자는 여명, 나는 노을이다. 하룻만에 도 감정이 켜켜이 쌓이고, 기억과 추억이 남는다. 젊음은 기억을 갖고, 노년은 추억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