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비가 왔다.
낮인데도 캄캄했다.
벼락과 천둥, 그리고 바람이 몰아치며 베란다 유리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창문 너머로 세상이 씻겨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느닷없이, 아무 예고도 없이
머릿속에 찾아온 손님 – Jazz를 맞았다.
사실 나는 음악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기껏해야 우리 가요나 가끔 동심초나 흥얼거릴 줄 알 뿐. 그런 내가, 재즈라니.
동네 야산에서 금붙이를 주울 확률보다 더 희박한 그 가능성이 오늘 내 머릿속에서 불쑥 솟구쳤다. 검색창에 떠있는 첫 이름, Louis Armstrong.
그리고 그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찼다. 하얗게 웃는 이빨, 두툼한 입술, 벌름거리는 콧방울, 커다란 눈동자.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 그리고, 그 거칠고 투박한 음성.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그의 목소리는 태곳적 원시성을 품은 강물 같았다. 거친 물살이 바위를 때리며 흘러가는 소리, 어쩌면 아기의 옹알거림 같은, 가식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음색.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목소리는 내 귀를 두드리고,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감미로우면서도 끈적였다.
마치 어깨를 맞대고 손으로 얼굴 윤곽을 더듬는 것 같은 섹시하고 퇴폐적인 음악이었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듣고, 또 듣고, 다시 듣는다. 몇 번이고 반복해 재생하며, 이끌린 이유 따위는 묻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의 공기, 비와 재즈가 뒤엉킨 감각이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얼굴이 화면 속에서 웃고 있었다.
왕방울 같은 눈, 마치 튕겨 나올 것 같은 표정.
그 웃음은, 거친 자갈밭을 맨발로 걸어 생긴 상처와 아픔을 목으로 쓸어 올리듯 담담히 읊조린다. “괜찮다, 다 지나갔다, 용서했다.”
그런 표정을 한 얼굴.
나는 오래전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를 떠올렸다.
둥싯둥싯 어깨를 흔들며 꾸밈없이 부르던 그의 모습. 암스트롱도 같았다.
순박한 웃음, 솔직한 목소리, 가식 없이 노래하는 모습에 나는 마음 깊은 곳이 흔들렸다.
살다 보면, 어디 먼 별에서 텔레파시가 닿은 듯한 순간이 있다.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소름처럼 스며드는 감각.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비가 와서였을까, 아니면 재즈의 음률이 내 감각을 흔들었을까.
생각이 정돈되며 감정은 깊어지고 나는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제 안다.
재즈는 집 안에서 혼자 듣기보다, 카페 구석진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니면 어두운 바의 후미진 자리에서 위스키 잔을 손에 쥐고 들어야 제맛이다.
앞으로 비 오는 날, 나는 재즈의 편에 설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 이후로 나는 조금 더 나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