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놈

by 서장석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알만한 일 때문에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혼자 끙끙대고 있다가 마치 다 곪은 종기가 튀어 나가듯 아내에게 화살이 돌아가 툴툴대기 시작했다. 벌이가 없어도 생활은 지속되어야 하고, 생활비를 주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수차례에 걸쳐 이 문제로 인해 다툼이 일어났었고, 일견 포기가 된 듯싶었는데 막상 조바심이 드러난 순간 되살아났다.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조바심이 명치로부터 오르기 시작하여 관자놀이를 통해 전두엽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 문제를 아내에게 전가할 이유도 근거도 없는데 그런데도 난 조급증이 나타날라치면 처에게로 화살을 돌렸음을 실토할 수밖에 없다.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나빠질 뿐인데도 쉽사리 고쳐지질 않는다. 연초에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구하려 노력하였다. 많은 이력서를 내고도 연락을 온 데가 두 군데밖에 없었다는 게 근심을 가진 이유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력서를 열어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리 고치고 또 저리 고치고, 채용자 눈으로 보았을 때 눈에 띄는 문구가 무엇인지도 고려해 수정하였으나 매번 제자리걸음이었다.


소득을 만들어서 생활해야 하고 여분으로 저축하는 것이 맞다 생각되는데, 문제는 경기 탓으로 돌린다 해도 소득 없는 기간이 오래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으로 인한 머리 아픔을 몇 차례 경험 하였으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만 조급해지고 인성만 초라해진다. 문제는 원인이 되는 조급증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나름 준비하며 살았고 이후에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는데도 이 모양이라는데 내 고민이 있다.

曲則全이라 적어놓고 아직도 주위와의 관계에서 그렇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단시일 내로 해소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주었던 인상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남는가? 첫째 현재 가지고 있는 조건들에 대하여 객관적 검토를 받아 보는 일이다. 두 번째는 안타깝고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일뿐 달리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살면서 정말로 많이 경험한 것 중 하나가 기다리는 것인데 오랜 경험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 기다릴밖에. 생활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고, 아무리 비용을 절약한다고 해도 기본 생활은 유지해야 하니 능력이 닿을 때까지 육신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화를 돌리고,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들에게 부탁하고, 귀찮더라도 그렇게 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마음과 생각이 달리 구분되어 이도 저도 아닌 경계에 머문다. 언제까지 입에 풀칠하기 위해 좌고우면해야 하는 건지 답답한 노릇이다. 답답하니까 끄적여 본다. 해결을 바라고 쓰는 글은 아니다. 쓰지 않으면 어디에 대고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그저 적는 글이다.

어제는 조계사에 갔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 간 것은 아니었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간 것이었는데 기온이 내려가 추위에 떨어야 했다. 집에서는 점심 거르기가 일쑤였는데 추위 때문인지 배고픔이 몰려왔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 조계사 대웅전으로 향했다. 참배를 마치고 종묘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 오백 년간 이 땅을 다스렸던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 알림판에는 안내 문자가 쓰여 있었다. 종묘 정전의 월대와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은 달뜬 기분을 가라앉게 해 주었다.

을씨년스럽게 마당 위를 바람만 지나다니고 있었고, 월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은 정면 왼쪽으로 세운상가 낡은 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과거가 현재를 살려주거나 보충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옛것으로 인해 현재의 불편을 감내하라는 것도 모순이다. 너무 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집사람에 대한 불편함이 머릿속으로 새록새록 솟아오를 때 한 배우가 드라마에서 한 말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다. 못난 놈. 그래 난 못난 놈이었다. 그 대사로 인해 생각을 바꾸었다. 잘해 주지 못해도 불편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옹졸함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이마저도 싹 없애버렸으면 싶은데 그렇게까지 되지를 않는다.

멈춤 줄 아는 마음이 생겨 그나마 다행이다. 풀어낼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무언가가 내게 반성의 빌미를 주었음에 틀림없다. 오늘의 생뚱맞은 잡념이 내 마음을 풀어내는 실타래가 되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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