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변화와 채석강 해식동굴

by 서장석

우리 땅 서쪽 바닷가에는 해식동굴을 품은 자연이 있다.

지구가 태어나려고 용틀임한 고통의 흔적이 남겨진 곳. 바람과 파도가 다듬고 순화시켜 만들어 놓은 곳. 이제는 사람의 발길을 받아들여 감춰둔 속살을 내밀어 보이는 장소. 채석강.

오산 I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부안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변산반도에 들어섰다.

주차하고 내려 일행과 함께 얕은 언덕을 오르니 바다가 보인다.


눈앞에 펼쳐진 백사장과 왼쪽으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기암괴석들. 드디어 이십 년 전에 와 보았던 장소와 재회하게 되었다. 초입에 맞이하는 잔손금처럼 갈라진 편평한 너럭바위가 보인다. 첫 방문 때도 그러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압도적 규모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경치가 또 한 번 놀라움과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바닥엔 돌이 돌을 삼켜 공룡알처럼 생긴 바위가 구석구석에 박혀있다. 마치 지구가 그들을 영원히 갈라놓지 못하게 단단히 결속시켜 놓은 듯했다.


바위들이 바람과 파도에 깎여서 약한 부분을 떨구어 모래로 내려놓았다.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기까지 달의 변덕은 얼마나 심하였을까 싶다. 밀물에 몸을 담갔다가 썰물에 다시 몸을 말리며 해풍에 삭은 부분을 떨궈 내는 행위가 수억 년 반복되었을 것이다. 제 살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이제 단단해진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경치는 해식동굴에서 절정을 이룬다. 밀물 때면 동굴은 모습을 감춘다고 한다. 바다가 물러났을 때 자연은 조화를 보여준다. 동굴은 바다의 삼신할미가 만들어 놓은 걸작이다. 우리는 걸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행운아였다.


첫 방문 때는 밀물 때여서 동굴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차라리 그때 몰랐던 게 오히려 기쁨을 배가시켜 준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현장을 남기려는 사진 찍기는 여기에서도 계속되었고, 순서를 기다려 의식을 치른다. 사람을 빼고, 동굴과 하늘 그리고 바다만 카메라에 담고 나머진 눈에 담는 게 현명해 보인다. 자연이 주는 질서에 순응하고 만족하는 게 좋을 텐데 인간의 욕심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갈 때 보지 못하고 관심 두지 않았던 물웅덩이가 눈에 띈다. 아주 작은 물고기가 그 세계가 전부인 양 인간의 눈길을 피해 돌 틈으로 숨기 바쁘다. 누구나 어떤 생물이든지 목숨은 귀한 것이다. 인간은 작은 물고기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만약 크기가 사람의 관심을 끌 정도였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고기에게는 덩치가 작은 게 제 목숨 유지에 좋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일행은 바다를 끼고 걸었다. 불과 수 미터 곁에서 파도가 치고, 소리가 들려온다. 바다가 살아있음을 원시의 목소리로 음성을 높이는데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왔다가 그 장소를 벗어나면 눈으로 담은 파도만 남고 소리는 잊어버린다. 그게 전부다.


인솔자가 격포항 수산시장 식당에 점심 식사를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40명이 몰려가 식탁에 앉으니 식당 안이 시끌벅적하다. 다양한 메뉴가 나온다. 전어구이가 보이고, 가리비와 대합찜 그리고 낙지탕탕이가 눈에 띈다. 막걸리 한잔 들이켜고 나니 모둠회가 나온다. 오랜만에 맛보는 생선회가 달콤하다. 여럿이 맛난 음식을 먹고, 웃고, 떠들며 일상을 보내는 게 이렇게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새만금 방조제로 가다가 신시도에 들렸다.

새만금 방조제를 보면서 인간의 능력 한계치가 어디까지인가가 궁금해진다. 인간의 욕심으로 넓은 땅이 새로 만들어지고 그 땅 위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갈대가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이전 06화오지마을 청학동에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