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이 채운 미덕

by 서장석

사하촌에서 버스를 타고 백담사에서 내리면 시작되는 길. 영시암으로 가는 길.

백담사에서 계곡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닿는 곳이다. 나는 계곡으로 난 길로 걸음을 옮겼다. 11월의 산과 들은 불을 지핀 듯 붉게 타올랐다. 그 절경은 설악에 모여 계곡물과 함께 젖어 흐르는 노랑과 빨강의 향연이었다. 눈을 돌릴 때마다 새로운 풍광이 밀려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박석이 가지런한 길, 오른쪽에는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자갈이 계곡물과 함께 모여있었다. 햇볕에 반사되어 순백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바위와 그에 몸을 기대어 흐르는 물줄기에 할 말을 잊는다. 물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흐른다. 자갈을 만나면 솟구치고, 너럭바위를 만나면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자연의 일부가 된다. 물은 언제나 한 박자 느리게 흐르며 바위를 감싸 안는다. 그 여유가 자연의 미를 완성하고 있다. 착함과 부드러움을 실천하고 흐르며 인간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암자 가는 길은 좁아서 두 사람이 교행 하기가 어려운 곳도 있다. 이때는 인원이 적은 쪽이 양보하여 서로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섞인다. 그 작은 교행(交行)이 우리네 일상에서는 왜 이리 어려운가. 이토록 쉬운 배려마저 늘 다툼으로 미뤄두는 것은 아닐까?

단풍의 절정에도 초록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나무의 녹색이 섞인 붉음과 노랑, 그리고 희미한 여름의 흔적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숲은 더 넓은 스펙트럼을 빚어내고 있었다. 사람도 저렇게 섞여 서로의 아름다움을 빛내줄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깨를 부딪쳐도 시비하지 않고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이 일상이 된다.

한참을 가다 만난 작은 부도 탑이 걸음을 잡는다. 설봉당 부도 탑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푯말이 없으면 쉬이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엔 눈을 덮고, 봄에는 새순 자라는 걸 보며 여름 무더운 장마를 이기고, 흐르는 거친 물줄기를 어깨너머로 바라볼 수 있는 곳. 가을엔 만산홍엽으로 덮인 곳에 탑을 세운 정성이 갸륵하고 그런 장소를 마련한 식견이 긴 여운을 남겼다. 삶도 죽음도 이곳에선 같은 선상에 놓인다. 산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나, 몸은 없지만 영혼으로 살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아침을 일찍 먹어 배가 출출해 온다. 지고 온 배낭에는 물밖에 없어 흐른 땀을 닦으면서 허기진 뱃속을 물로 채운다. 과일이나 오이라도 챙겨 올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오른쪽엔 수렴동 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왼쪽으론 온갖 나뭇잎이 가을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영시암까지 600m 남았다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다리 쉼을 하고 있었다. 비로전이란 편액이 걸린 법당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무탈하게 이곳까지 오도록 도와주셨으니 갈 때도 무탈하게 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사 하고 기도를 드렸다.

법당을 내려오니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쪽으로 와서 점심 먹어요’. 집사람의 짧은 부름.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가 무거워졌다. 일행들이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떡과 김밥, 과일을 나눠 먹었다. 달콤 쌉싸래한 막걸리 한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허기와 갈증이 동시에 사라졌다. 뱃속이 따뜻해지니 아침에 보았던 풍경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라 속 뜰을 채웠다. 몸이 고요해지자, 자연이 건네준 작은 기쁨들이 제자리를 드러냈다. 심신을 채우겠다며 산에 온 새벽의 의욕은, 허기 앞에서 어느새 머쓱해졌다.

우리 땅 가을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숲과 물, 바람과 단풍 사이를 지나오며,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일을 반복하게 하고 있었다. 발아래 굴러다니는 낙엽 한 장까지 따스한 정서가 되었다. 설악이 내 속 뜰에 기어이 채워 넣은 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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