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에 살아도 방과 방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생긴다. 문 하나를 닫는 순간 온기와 기척은 금세 끊기고, 마음의 온도마저 달라진다. 물리적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짧지만, 마음의 거리는 문틈처럼 깊고도 어둡게 파인다. 문을 닫는 그 찰나, 서로의 눈길조차 스치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사람은 본래 혼자인 존재다. 그러나 함께 부대끼고 살면서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법을 배워왔다.
아내와 각방을 쓴 지 십 년도 넘었다. 우리는 주말부부였었고 이는 결국 서로에게서 말을 앗아갔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가끔은 지독하게 혼자임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다른 데 집중하거나 몰입할 때는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함께 있어도 대화가 겉돌 때가 있다. 한쪽에서 흘러나오기만 하는 말은 대화라기보다 통보다. 말하기와 듣기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막막해진다. 사람은 서로 인정받고자 애를 쓰지만 그 노력마저 닿지 않을 때, 관계는 무관심이라는 마지막 벽에 다다른다.
말은 때때로 과시가 되거나,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소음이 된다. 가까이 있지만 멀리 서 있는 듯한 공허함이 스며든다. 관계가 나빠지는 순간에도 성급한 행동은 관계 회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상대에게 부탁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나아가 내가 쳐 놓은 감정적 관계의 울타리는 공평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언어도 습관이 있어서 그간 쓰지 않았던 표정이나 어휘를 사용하려면 낯 간지러울 수 있다.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언어다. 말의 한 끝이 상대의 감정을 향해 날카로워질 때 대화는 금세 상처로 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표현 하나까지도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이것은 가족 간에도, 타인과의 사이에도 똑같다. 특히 회사와 같이 조직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다듬어 익히고 조심해야 할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거친 말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감정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결례를 되갚는 일은 관계를 파괴할 뿐이다. 말 한마디가 벽을 세우고, 가까웠던 마음도 그 앞에서 멀어진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거리가 가지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을 풀어내야 한다.
혼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 어렵기에 책과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책은 단순한 글이 아닌, 의미를 새기고 체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주위의 도움을 선택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 이 조언이 진정으로 내게 필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성찰과 깨달음은 나를 성숙한 주체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마음공부를 글쓰기라는 행위로 승화시켜, 나와 남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글쓰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반성과 이를 이행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명상과 같은 심연을 거쳐 정립된 것이어야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인식해야 다른 이에게 체득한 것들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것들만 사유의 그릇에 온전히 담을 수 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 번쯤 완전한 고독 속에 내려가야 한다. 그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근본을 보고자 노력한다. 무수한 상념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생각들은 들새의 날갯짓처럼 스치고 사라진다. 나는 그것들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고, 다시 흘려보낸다. 그 반복에서 비로소 마음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 과정은 내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며 공부에 불필요한 것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훈련은 결국 참된 거리를 배우기 위한 일이다. 거리를 바로 세울 때 관계는 비로소 오래간다. 내가 징검다리가 되어 타인의 깨달음을 돕는 일이 허공에서 흩어지게 하지 않으려면, 나에 대한 성찰이 먼저여야 한다. 가까워지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 그 간격을 지키는 일. 어쩌면 그것이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인지도 모른다.
가깝게, 또는 멀게. 그 미묘한 간격이야말로, 서로를 잃지 않는 가장 짧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