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집에서 봉하까지 3시간 40분이 걸리더군요.
마을의 첫인상은 맑고 깨끗한 전형적인 시골 농촌이었습니다. 당신께서 계시지 아니하였다면 대한민국의 어디에 있는지조차 관심을 두지 아니할 그런 곳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시키고 맛나게 한 그릇 했습니다. 배고픔을 덜고 나서 당신 계신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앞에 있는 자갈로 덮힌 물그릇을 보았습니다. 중앙에 헌화대가 보이고 좀 더 멀리에 당신이 누워계셨습니다. 가는 길 양옆으로 박석이 깔려있었고, 그 위를 새해의 추위를 머금은 바람이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무릎을 털썩 꿇고 당신께 고했습니다. 뵈러 왔다고요. 당신께서 수원 연화장에 들러 당신의 몸을 낮추실 때 영정 사진 속 당신을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당신을 가까이에서 마주합니다. 울음이,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삼키고, 삼켰습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속 울음만 드러내었습니다. 내 부모님 돌아가시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계실 땐 몰랐는데 땅 아래 계신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개를 들어 앞에 보이는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를 쳐다봅니다. 마치 아득한 옛날을 반추하는 듯합니다. 저들은 그때를 기억하겠지요. 흘러가는 것은 모두 역사가 됩니다. 아픔도 영광도 슬픔도 모두 역사가 되어 뒷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겠지요. 살아서 소박한 모습을 보이셨던 당신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몸을 낮추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것인지를 몸소 보이셨다고 생각됩니다. 당신의 고향 땅 한 자락 너럭바위 아래에 몸을 뉘고, 산 자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됩니다. 안타까워하지 말라던 당신의 육성은 공허한 메아리 되어 바위 사이로 흘러 지나갑니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지만 지금 살아 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궁금해집니다. 매년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지만 2025년 작년은 우리에게 매우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땅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해였다고 생각됩니다. 살면서 매 순간 결정하고 정리해야 하지만 너무 잦은 세태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줄 뿐입니다. 당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당신과 마음속으로 함께했던 시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맨 끝 방에서 하늘 높이 솟아있는 노란 바람개비를 보며 당신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하게 맞다는 개념보다 어쩌면 당신과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가 바람이라도 불어올라치면 바람을 친구 삼아 빙빙 돌면서 하늘의 구름에게 한없이 웃음 주는 촌로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당신이 보았던 책장도 들여다보았습니다. 같은 책을 읽은 부분도 있고 전혀 생소한 책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머릿속으로 다 담을 수 없어서 현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책 제목이 같다고 읽은 느낌까지 같을 순 없겠지만 당신의 눈을 거쳐 간 책의 내용을 확인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당신의 전속 사진사가 펴낸 《 대통령님 찍겠습니다 》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보았던 사진들이 기념관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다시 한번 보는듯하여 반가웠습니다.
당신 스스로 위대하단 생각은 없으셨겠지만 당신은 참으로 난 분이셨습니다. 사진 속 가식 없는 웃음과 진지한 표정을 찰나에 담아낸 사진들을 보면서 올곧게 살아낸 당신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병오년 새해를 맞아 당신을 뵙고 가면서 일렁이는 마음속 울림을 담아갑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평안한 일상이 되도록.
저도 당신을 위한 기도를 올리려 합니다.
삶이 자존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관리를 하고, 관계를 설정하는데 치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께서 보이신 순수는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지키기 쉽지 않은 명제입니다.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흙탕물에는 발을 담그지 않는다는 옛사람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는 것이 천편일률적으로 획정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치에 맞는 규범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이겠지요.
이제껏 실천했거나 혹 하지 못한 게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차분하게 생각하고 지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을 추억하고 기억하며 이런 생각이 당신과 나를 위한 기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당신 계신 곳에선 낙엽이 뒹굴며 묘역 언저리에 놓아집니다. 이도 자연이요 저도 자연이어서
조화롭게 섞여가며 질서를 이루어 갑니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풀이 없습니다. 다시 봄이 되면 박석 가장이 흙에서 풀씨가 싹을 틔울 겁니다. 뽑아도 좋고, 그냥 놔두어도 지낼만할 겁니다.
언젠가 저도 돌아갈 때가 되면 먼발치에서라도 한번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