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레이블링의 중요성을 느끼다
요 근래에는 물리 버튼을 다루는 일보다 모바일과 웹상의 가상의 버튼을 다루는 일이 많아졌다.
이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따른 다양한 모바일 서비스들의 등장이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과 웹을 포함한 N스크린 환경에서의 UI 디자인은 그 중요도가 날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N스크린도 너무 오래전 단어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 역시 이런 스크린 환경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다. 2010년도 대학교에 올라와서 친구를 통해 스마트폰을 처음 접하였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모바일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 봤자 10년 남짓 되었지만 말이다.
그 10년 사이에 UI 디자인은, 실재 물리적 인터페이스와 비슷하게 디자인한 스큐어모피즘과 화면 크기가 작은 모바일 환경에 특화된 플랫디자인, 스큐어모피즘과 플랫디자인이 적절히 섞인 네오 스큐어모피즘까지 그밖에 디자인 변화가 더해져서 트렌드를 따라가기 벅차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물리적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에, 스크린 속 환경과 현실 세계의 인터페이스의 조화가 필요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보행자 신호는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구분된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초록불일 때 손을 들고 건너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초록불일 때 건너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약속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지금은 우측통행이 당연 시 되었지만, 한창 좌측통행이 일반화되었던 때가 있었다. 보행은 좌측으로, 자동차는 우측으로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보행자 우측통행을 전면 시행하였을 때의 그 혼란을 나는 기억한다. 우측으로 다니는 사람, 좌측으로 다니는 사람, 우측으로 갈지 좌측으로 갈지 고민하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 등 사회적 약속을 변경하여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혼란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현실의 인터페이스 요소를 가상의 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바일에서의 버튼을 보면, 버튼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표시하는데 초록색을 사용하였고 비활성을 나타내는데 무채색의 검은색 계열을 사용하였다.
비단 초록뿐만 아니라 기능이 활성화되었음을 나타낼 때는 애플리케이션의 주조색을 강조색으로, 기능이 비활성화되어있음을 나타낼 때는 위와 같이 채도가 낮은 검은색이 주로 사용됨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전기 차단 스위치는 어떨까?
평소에 전기 패널의 전기 차단 스위치를 ON/OFF 시킬 상황이 자주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스위치는 집과 사무실의 전등 스위치이기 때문이다.
전기 차단 스위치는 일상에서 접하는 스위치와 분명 다르게 생겼다.
그래서 나는 전기 차단 스위치를 보고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스위치에 ON/OFF 가 쓰여있지 않았으면 아마 사고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켜져 있는 스위치를 차단해야 하는데 당연히 초록색이 켜져 있는 스위치인 줄 알고 차단하려고 하는데, 웬걸 스위치에 떡하니 OFF라고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인지부조화가 발생하였다.
신호등은 초록색일 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므로 초록색은 동작의 실행을 의미한다.
모바일 설정 버튼 또한 초록색일 때 기능을 사용하도록 설정하게 되므로 동작의 실행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전기 패널에서 초록색은 단전을 의미하며 동작의 정지를 의미한다. 오히려 정지를 의미하는 빨간색이 통전의 기능을 담고 있다.
동작의 실행적인 측면이 아니라 색이 가진 이미지 측면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초록색은 보통 안전, 안정, 평화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에 반해 빨간색은 뜨거움, 위험, 폭발의 이미지를 가진다.
색이 가진 이미지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전기 스위치의 색상에 따른 기능의 동작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전기가 통하면 위험하니까 빨간색으로, 그러므로 빨간색은 전기가 통하는 상태를 나타내고, 전기가 차단되면 안전하니까 초록색, 그러므로 초록색은 전기가 차단된 상태를 나타낸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러한 스위치를 만나게 된다면, 인지부조화의 발생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바일 기기를 10년 남짓 사용하고 있는 나도 헷갈리는데, 모바일에서 초록색이 기능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스마트폰을 접하는 연령이 낮아지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말이다.
그렇기에 색상에 따른 기능의 구분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인지부조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또는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크지 않도록 색이 가지는 이미지도 한번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일로 문득 적록색맹과 같은 색각 이상의 불편함이 있는 경우에는 색상에 따른 기능의 구분은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레이블링의 효과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