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 2 - 카메라, 소중한 것을 보기 위한 도구
카메라, 구시대의 유물?
사진을 찍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 최첨단(?) 시대.
'카메라'라는 단어가 '사진을 찍는 기계'라는 뜻 보다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 혹은 어플'이라는 의미가 더 와 닿는 시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이는 시대.
그 이유는 당연히 스마트폰.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는 오래전부터 이미 수준 높은 카메라 렌즈들이 탑재되어 있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스마트폰을 꺼내서 터치 한 번으로 훌륭한 퀄리티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를 탄생시킨 미국의 A사에서도 최신 모델에 줌, 광각 렌즈가 달려있고, 국내 별세 개짜리 대기업에서는 최근 광학 50배 줌이 가능한 렌즈가 탑재되어 있는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이것은 스마트폰에 있어서도 카메라 기능의 사용 빈도가 높고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위한 기준에도 카메라 기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런 이야기를 대단하다는 듯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미 원시적인 모습이다.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혹시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카메라 덕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FUJI FILM X100V를 구매하기 전 1년간 함께 했던 X100F, 남자의 손에는 너무 작은 크기와 줌이 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이쁜 비주얼로 모델 역할은 훌륭했다.)
디스크 조각 모음
하지만...
나는 1년 반 전부터 일상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회사 생활에 파묻혀 나는 누구인지, 여긴 어디인지 하는 혼란한 마음이 들 무렵, 본능적으로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 일 외적으로 내가 좋아하던 것을 찾기 시작했고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 카메라를 샀던 때는 6-7년 전.
지금과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사진을 취미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처음 내 돈을 벌면서 인생 첫 카메라로 C사의 DSLR을 구입했었다.
당시 유행하던 O사의 작고 이쁜 미러리스 카메라와 C사의 DSLR을 비교했었는데 미러리스 카메라는 이쁘고 들고 다니기는 좋았지만 마치 어린아이들 장난감과도 같은 셔터음이 아쉬웠다.
반면 C사 DSLR의 묵직한 무게감과 진지한 셔터 소리 한방은 '아, 이 놈은 진짜 사진을 찍기 위한 기계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고 무거운 DSLR은 오히려 사진을 찍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게 했고 나는 점점 카메라로부터 멀어졌다. 초년생으로서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만으로도 벅찬 시절을 보내면서 취미라는 것을 잊고 살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1년 반 전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선이 경쾌하면서도 클래식한 모양에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아서 매일 들고 다니기에 적당한 F사의 작은 X시리즈 카메라를 구입했다.
온갖 복잡한 생각과 스트레스가 머리에 들어차 있을 때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갖다 대고 다른 한쪽 눈을 감으면 그 순간 모든 잡념들이 사라지고 내가 바라보는 것과 나 자신 이 두 가지만 세상에 존재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방법이자, 똑같은 일상에서 특별함을 관찰하는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방법인 것이다.
짧은 몰입의 순간을 거쳐 셔터를 누르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개운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짧은 순간 컴퓨터의 디스크 조각 모음이라도 실행한 듯 머릿속의 잡념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느낌이 초단기 몰입 혹은 명상과도 같다.
카메라, 소중한 것을 보기 위한 도구
스마트폰은 많은 기능이 탑재돼 있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편리함 만큼 한 가지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머릿속을 산만하게 만든다.
우리의 눈도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눈을 뜨고 있을 때 많은 것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 중요한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몰입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를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에 대한 몰입감은 빠져있다.
카메라는 단순히 찰칵하고 사진을 찍고 끝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담아낼 순간과 대상을 조금 더 몰입해서 보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배우 강동원은 시력이 좋지 않음에도 굳이 선명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평소에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팬미팅 때는 팬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 안경을 착용한다고 한다.
그렇다 눈이 나쁜 미남 배우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소중한 팬들을 보기 위해서만 안경을 착용한다.
미남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 정도는 될 것 같은 보고 싶은 것, 소중한 것만 집중해서 보기.
답은 나왔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