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paris_왜 최애인지 알겠어, 쁘띠팔레

클래식한 무드에 모던 한 방울, 위트 한 방울

by sseozi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저녁에 공항으로 떠나기 전, 희원이와 둘이서 파리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어디 가고 싶냐 묻는 이히에게 쁘띠팔레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너가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쁘띠팔레.


20240606_102923.jpg 쁘띠팔레(파리시립미술관)


‘작은 궁전’이라는 뜻의 쁘띠팔레는, ‘큰 궁전’이라는 뜻의 그랑팔레와 함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춰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 지어진 예쁜 궁전이다. 거대한 그랑 팔레와 마주 보고 서서 파리 시립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20240606_102940.jpg 리모델링 중이던 맞은편의 그랑팔레. 현재는 완료했다고 한다.


여행 전부터 희원이가 무척 예쁜 곳이라며 파리의 미술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쁘띠팔레에 대해 알려줬었다. 희원이가 유학 시절부터 종종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쁘띠팔레. 외로운 유학 생활 중에 작고 예쁜 궁전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고취되었을 친구의 시간을 나도 함께 느끼고 싶었다.


20240606_102944.jpg 쁘띠팔레 Petit Palais


파리-옆 동네-지앵인 친구와 함께 하니 지도를 확인할 필요도 없고 마음이 든든하고 편안했다. 신나게 수다 떨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쁘띠팔레는, 과연 듣던 대로 예뻤다. 웅장한 루브르박물관, 멋진 오르세미술관,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찬란한 오페라 가르니에, 장엄한 앵발리드– 다 가봤지만 단연 가장 예쁘고 우아했다. 비슷비슷한 고전적인 건물들 속에서 유독 쁘띠팔레의 외관에서는 여성성이 느껴지는 것이 놀라웠다. 다른 미술관은 유명한 거장들이 무게잡고 있는 느낌이라면, 쁘띠팔레는 고귀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숙녀가 입가에 웃음을 띠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 같달까.


20240606_103022.jpg 쁘띠팔레의 출입구인 황금문이 유명한 파사드


쁘띠팔레 내부도 외관과 마찬가지로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예쁜 느낌이었다. (‘다른 미술관에 비해 아담하다’는 뜻이다. 사실 쁘띠팔레는 전혀 쁘띠하지 않다) 여느 유명한 미술관에 비해 덜 붐벼서 관람하기도 좋았다. 마치 편집샵에 온 것처럼 공들여 엄선한 작품들을,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자리에,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짜임새 있게 배치한 것이 느껴져서, 작품과 공간을 함께 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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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6_103553.jpg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 조각은 생각도 못 했지
20240606_103529.jpg 진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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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도 독특했다. 고전적인 회화, 조각 작품이 있는가 하면, 마우스 커서가 그려진 현대 미술작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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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들은 고전과 현대의 요소요소를 다 가지고 있기도 했다. 클래식한 베이스에 모던함과 위트를 가미한 독특한 공기가 온 사방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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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팔레 자체가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건축양식이라던데, 이 얼마나 정교한 큐레이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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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팔레의 작품에는 어머니와 자녀, 성모 마리아, 소녀 등 여성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는 것도 또 다른 특별함이다. 동화 ‘소공녀’가 떠오르는 소녀들을 그림 또는 조각으로 여럿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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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민의 생활상이 드러나는 생생한 작품들도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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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발랄하면서도 섬세함이 느껴지는 쁘띠팔레. 희원아, 네가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 나도 좋아.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희원이가 예전에도 보았을 게 분명한 작품에 다시 한번 빠져드는 모습을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며, 우리는 따로, 또 같이 각자의 감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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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모든 작품 관람이 끝났다. 우리는 중정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와 딸기 디저트를 먹었다. 중정에서 바라보는 쁘띠팔레는 더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중정에서 사진만 찍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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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수다도 차츰 흥분이 가라앉았다. 이제 대화에 가릴 수 없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함께하던 시간이 다시 한번 마무리 지어지고 있었다. 언제 다시 이렇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쉬움 없이 실컷 현재를 나눌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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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좡빌르뽕으로 터벅터벅 돌아왔다. 희원이네 집에서 이제 모든 짐을 싸서 나왔다. 온 가족이 아쉬운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전했다. 귀여운 아이들은 비행기에서 보라며 깜찍한 편지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희원이 얼굴에 잔뜩 묻어나는 아쉬움과 섭섭함에 내 마음도 더욱 먹먹했다. 정말 고마웠어요, 모두들.


형부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적당히 나른한 몸으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시 혼자가 되었구나. 이제 공항에 도착하면 프랑스를 떠날 일만 남았네. 알 수 없는 기분들이 맴돌았다. 그 기분에 굳이 이름 붙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해도 뉘엿해졌다. 하루가 저물어간다. 여행도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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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공항에 다시 도착했다. 한 번 와봤다고 긴장이 덜하다. 빠르게 탑승수속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남았다. 저녁을 먹을 겸 탑승동에 있는 식당 중에서 가장 프랑스 느낌이 나는 곳으로 향했다. 묵직한 레스토랑 분위기에 살짝 주눅 들 뻔했으나, 나는 곧 이 나라를 떠난다. 느긋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혼자서 찐 프랑스 요리를 먹는다. 익힌 시금치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생선 요리, 그리고 디저트로 크림 브륄레까지. 부드럽고 담백하고 조화롭다. 맛있다, 맛있어!매일 이런 음식만 먹을 줄 알았었는데. 뭐, 지금이라도 먹으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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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기분과 나른한 피로감을 느끼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완연한 노을이 하늘에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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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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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노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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