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침살 3개 가진 사람이 갖는 직업 - 뜨개수련자
잘하냐 물으시면 누구보단 잘하고 누구보단 못합니다.
얼마나 했느냐 물으시면 가끔 하다가 요새 자주 합니다.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할 테고 계속하면 오래 한 사람이 되겠죠. 하지만 제게 중요한 건 실력이나 결과물이 아닙니다. 결과, 평가를 제외하고 뜨개 과정에서 얻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우울, 불안장애 그리고 ADHD 약까지 먹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을 다잡고 평안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위 환경이라도 조용하면 좋으련만 작은 바람마저도 제 어깨를 툭툭치고 지나갑니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으나 머릿속 라디오는 꺼지지 않고 집중이 안되는 상태에 꽂혀 부정적인 생각만 커졌습니다. 결국 자책으로 마무리합니다. 매년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다시 바늘을 잡게 되는데요. 예전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틀려도 못생겨도 무시하고 그냥 쭉 떴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요. 강박을 버리기 위해 일부러 무시하기 시작했는데 효과가 꽤 좋았습니다. 어려워서 이건 못하겠다 싶었던 코바늘도 무한 사슬 뜨기 연습으로 기본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뜨개질로 옷만 만든 줄 알았는데 끈기도 만들었습니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번 단만 뜨고 쉬어야지를 열 번 정도 반복하면 어느샌가 마무리 근처에 다다릅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 ‘겉뜨기 할 때는 실이 뒤로, 안뜨기 할 때는 실이 앞으로. 틀리면 풀고 다시 뜬다’ 외에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뜨개질을 하는 나만 있을 뿐 어느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게 몸과 마음이 한 데 있음을 느꼈습니다. 뜨개질은 수련과도 같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뜨개수련자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뜨개질로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며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면 그때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누고 베풀겠습니다. 저는 참 운도 좋고 복도 많네요. 제 삶의 목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업을 30대 초반에 찾다니요. 다시 한번 적어봅니다. 뜨개수련자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