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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 Sep 05. 2016

05.  버티기 위해 쓰는 글





얼마 전 남자 친구에게 허지웅 작가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선물 받았다. 2년 전쯤에 책 읽는 것이 너무 재밌고 즐거워서 하루에 한 권씩 읽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언제인지 모르게 지겨워졌고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 책을 사는 일만 하고 있다.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긴 읽겠지 하며. 개강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학기 중에 여유로운 시간은 지금 뿐이야 하며 책을 읽기로 했다. 결론은 그 일주일 동안 작가의 말만 읽었다는 애석한 이야기지만 나는 어떤 버티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여수에서 살았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내가 100일이 좀 지났을 때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고 서울에서 혼자 나를 키울 26살의 딸이 불쌍했을 우리 할머니는 본인이 나를 봐주겠다고 했다. 내가 7살이었을 때 다음날 교회를 같이 가려고 우리 집에 사촌동생이 와서 잤던날 할머니는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그 쓰러진 할머니를 봤다는 게 정말 이상하면서 신기하면서 다행이기도 하고 정말 기분이 오묘하고 그땐 조금 무서웠다. 그 후에 엄마는 여수에서 나와 고집불통인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때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그전부터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엄마는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가 그 일이 점점 줄어들자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에 나를 둘째 이모네에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 일했다. 본인이 20대 초반에 배웠던 봉제공장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고 내가 2학년이 될 때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 전학 가기 싫다고 울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엄마가 더 울고 싶었을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어느 집에 딸려있는 쪽방이었다. 정말 좁고 아무것도 없었다. 정리할 옷장도 없지만 정리되지 않은 옷들이 박스에 있었고 텔레비전도 있었는데 받침대도 없이 바닥에 있었다. 원래 못살았지만 더 못 사는 집으로 왔더니 그 집 자체가 내게 상처였다. 그 상처가 번져서 지금까지 온 건지 서울에 와서 만난 친구들 선생님들 정말 다 좋았지만 엄마는 너무 싫었다. 엄마는 나와 정말 잘 맞다. 정말. 술 먹을 때만 빼고. 서울에 왔으니 열심히 살겠다며 내게 술을 절대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어제도 나는 그 문제로 엄마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없어서 다른 누군가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고 그 쪽방에 방세를 내지 못해서 나만 혼자 조용히 가서 중요한 책과 교복만 챙겨서 나왔다. 도망 왔다. 그 주인집 창고에 있던 내 어렸을 적 앨범이 그립다. 그 후에도 막내 이모집, 고시텔을 옮겨 다니며 항상 엄마가 술을 먹고 일을 하지 않거나 일을 가지 않거나 일이 없거나 하는 이유로 쫓겨나거나 욕먹는 일을 내가 감당해야 했다. 엄마는 술에 취해있으니 기억도 못할 테고 항상 회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랑 나는 고시텔에 살고 있다. 대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모를 정도로 다시 술을 먹더니 두 달째 일을 안 가고 다시 또 술을 먹고 또 잠에 들면서 그 좁은 방에서 나 몰래 술을 먹겠다고 새벽에 화장실에서 캔맥주 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전처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해서 그렇지"였는데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났는데 우는 것도 싫어서 참느라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 버. 틴. 다는 글자를 봤더니 버티기가 싫어졌다.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받는데 학교에선 웃고 잘 지내고 집에 오면 죽고 싶은 것이 버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 사는 것에 버티는 것이 있어야 할까 왜 버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시기가 지나간 후에 글을 썼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땐 참 힘들었지 했을 텐데. 또 모르지 뭐. 그만 아프고 싶고 그만 울고 싶은 마음에 버티기 싫은 마음에 쓰는 글. 그러니 누구도 내게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 말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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