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지 100일이 좀 지나자 나의 아빠는 하늘로 가버렸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기 때문에 하늘로 떠난 그 사람을 나의 아빠라고 하기보단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아빠라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였다.
엄마와 불광천을 걷다가
"엄마, 엄마는 왜 이혼했는데 위자료 이런거 아무것도 못받았어?" 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에 있는 사람한테 무슨 돈을 받아" 라는 대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여수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내가 커서 엄마가 있는 서울에 가면 아빠를 볼 수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 엄마에게 그 대답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었는데 아예 볼 수 없는 사람이라니, 엄마는 예전에 내게 말했다고 했지만 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년이 올라 갈 때마다 호구조사를 하면 매번 "아빠는 서울에 계세요"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 할 수 없었다. 중1때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단 한번도 아빠를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난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반 친구가 나에게 "넌 아빠도 없잖아" 라고 했을 때 당당히 "우리 아빠 서울에 있어"라고 대답하던 어린 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 이후 나는 아빠가 없다고해서 슬프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잘 자라서이젠 20대 중반이 되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때마다 항상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괜찮아, 우리반에 너 같은 애들 많아"를 시작으로 아르바이트 할 때 사장님은 부모님이 모두 안계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너는 행복한거야~ 엄마는 있잖아"까지 아빠가 없는 나는 누군가에게 비교되어 더 행복한 사람이거나, 비슷한 사람이거나,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왜 우리는 항상 사회의 기준에 맞춰 나와 남을 바라보게 될까? 사회의 기준이라고 하기엔 너무 광범위하지만
가족은 당연히 엄마,아빠가 있어야하는 것이며 없으면 안타깝고 가끔은 불쌍해지며 그 중에서도 한 분만 없는 것보다 두 분 다 안계시는 것이 더 불쌍하고 안타까우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며 "에휴, 그래도 잘컸네" 하는 것을 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할까?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눈빛들 속엔 이상한 동정이 가득한데 그것은 자신들이 있는 것이 나에게 없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나를 안쓰럽게 보는 눈빛이 얼마나 헛구역질 나는지 사람들은 모르겠지.
우리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만 있을 뿐 남이 판단 할 것이 아니다. 아직 20년하고 좀 밖에 더 살지 않았으니 앞으로의 나는 또 얼마나 불쌍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