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당한 유매니저 이야기 [4]

김장봉사활동

by 서킬스

연말마다 회사에서는 김장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었다. 매년 바쁘다는 핑계로 슬쩍 빠지곤 했었는데 이번엔 바쁜 일정이 없었기에 자원해서 봉사활동을 오게 되었다. 성남시 중원구청에서 독거노인분들을 대상으로 김치를 직접 담가 배송까지 하는 꽤나 의미 있는 행사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여 회사 동료분들과 재미있게 김장을 담그던 도중 함께 참여했던 후배 유매니저가 은근슬쩍 옆에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선배님 저 오늘만 기다렸어요. 이렇게 김장 담그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주셨으면 해요. 제가 봉사활동 끝나고 나서 스타벅스 커피 쏘겠습니다!"


"스타벅스는 됐어. 비싸잖아. 나는 컴포즈 커피면 충분해. 내 입에는 그게 딱 맞더라. 사실 커피 맛을 잘 모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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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진짜였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메가커피보다는 컴포즈 커피가 더 내 입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네, 좋아요. 선배님! 저도 돈 아껴서 내 집마련 해야 하니까요! 그럼 엊그제 이야기에서 조금 더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후배는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뭔가 똑 부러져졌다고 해야 할까?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보이기도 했다.


"선배님, 일단 제가 전에 송파구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5년 후까지 8억 원이 넘는 돈을 모아야 하는 것이었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모을 순 없어요. 제 월급을 아무리 모아봤자 5년 후에 1억 5천만 원 정도 모을 수 있을까 말까 하니까. 그리고 앞으로 아이에게 들어갈 돈도 많아질 거라고 들었어요. 집에 가서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보며 계산해 보니 조금 답답해진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후배는 정말 열심히 고민을 한 듯 보였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엄청 답답할 테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에 조금 더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지금 네가 고민하고 있는 게 정확해. 사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절반 이상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야. 내가 정리해 볼게. 들어봐."


결혼도 하고 내 집 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집이 너무 비싸다.
돈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주식이나 코인으로 대박을 내야 한다.
대출을 받아서 무리한 투자를 한다.
대박이 날 수도 있지만 쪽박이 날 수도 있다.
쪽박이 나서 돈을 잃었는데 그것을 희화화하며 같이 돈을 잃은 사람들끼리 또 다른 투자처를 알아본다.
또 투자한다.


"맞아요. 선배님, 저도 어제 막상 5년 동안 8억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주식이나 코인으로 눈을 돌려서 일단 거기서 벌어가지고 집을 사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도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금, 채권 모든 자산에 대해 투자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해. 그런데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그런 자산에 투자한다고 하는 행위가 사실은 투기에 가깝다는 것을 배웠어.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나중에 정확히 알려주는 게 나을 거 같아. 내가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내줄 테니 봐봐."


"네... 선배님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사실 오늘 아침 셔틀버스 안에서 이미 코인 투자거래 앱을 설치했거든요."


후배는 부끄러워하며 본인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을 보여주었다.


"뭐 재미삼아 해보는 것은 좋지. 그저 내가 우려되는 것은 투자를 해서 8억 원이 넘는 돈을 벌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 투자 종목에 대한 공부는 제대로 했는가?'

야. 사실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유튜브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듣고 공부가 됐다는 판단을 한 다음에 나의 전재산에 가까운 돈을 투자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뜻이지. 사실 그 정도 공부해서 8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 정말."


"선배님 너무 아파요. 뼈가 욱신욱신 거리네요. 어떻게 제 생각을 읽으셨지? 저 어제 유튜브 보고 비트코인에 투자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거든요. 한방 확 터뜨린 다음에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그 마음을 너무도 이해하기에 짧은 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어쨌든 투자를 해서 돈을 벌어야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타고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나는 이후에 좀 다른 접근을 했지."


"어떤 접근이요?"


"나는 뭘로 든 8억 원을 벌어본 적이 없으니. 8억 원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그 시간이 짧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지. 적어도 2~3년은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선배님, 공부를 3년 해야 된다니요... 너무 길어요. 저는 빨리 돈을 벌어서 송파에 멋진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요?"


많이 좌절한 후배의 모습이었다. 내가 너무 쓴소리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좋은 말도 해주고 싶어졌다.


"속상하라고 한 얘기는 아니야. 나도 모르게 너무 답답한 이야기만 하고 말았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유매니저라면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야. 절대 이게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지.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네, 선배님. 그러니까 선배님이 저라면 지금 어떤 거를 하겠다는 말씀을 한다는 거죠?"




"맞아. 내가 유매니저라면 지금부터 6개월 안에 가용할 수 있는 돈으로 내 집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부동산 공부를 할 거 같아."


"네? 저는 8억 원이라는 돈이 없는데요?"


"8억 원은 없지. 하지만 지금 전셋집의 보증금과 모아둔 여분의 돈이 있잖아. 그 돈과 담보대출을 받아서 갈 집을 찾아보는 거야. 아이도 있는 데다가 첫 주택을 취득하는 것이므로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도 열심히 알아볼 것 같아. 그리고 이제부터 중요한 거"


"중요한 거요?"


"응 중요한 거. 나라면 지금 가진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실거주집을 다시 찾아볼 거야. 송파가 아니라. 성남이나 용인, 안양 같은 회사 근처의 수도권 집들로."


"저는 송파 아파트를 사고 싶었는데..."


"내가 중요하다고 말했잖아. 지금 전세를 살고 있잖아? 보증금 3억 원에. 그 돈은 2년 뒤에 돌려받을 거야. 하지만 이자가 붙지 않지. 원금 그대로 돌려받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잖아. 그런데 만약 그 돈을 합쳐서 실거주 집을 마련했고 운 좋게 그 집의 가격이 2~3년 뒤에 올랐어. 그럼 그 돈이랑 그동안 모은 돈이랑 합쳐서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면서 갈아타기를 하는 거야. 나라면 그렇게 할거 같아."




갑자기 날카로운 눈매의 후배는 나에게 뾰족한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 저도 선배님의 말씀에 동의해요. 하지만 제가 걱정되는 건 전세가는 원금으로 돌려받기에 2년 뒤에 3억 원으로 그대로 돌려받지만 제가 산 집의 가격이 내리면 어떻게 하죠? 그럼 전 돈을 잃는 거잖아요."



"맞아. 아주 좋은 질문이야. 집값은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어. 하지만 일단 내가 사는 집이잖아. 대출금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집을 샀다면 나는 2년 뒤에 이사 갈 걱정 없이 편안하게 대출금을 갚으면서 그 집에 살아가면 돼. 그게 내 집마련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

그리고 철저한 공부를 통해 만약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다른 집들보다 덜 떨어지는 집을 사는 것이 나의 목표야. 그렇게 좋은 집이라면 상승장에 더 폭발적으로 가격이 올라갈 수도 있어.

또한 내가 만약 수도권에 좋은 집을 사놨다면 네가 이사 가고 싶은 그 송파집이 올라갈 때 비슷한 상승 곡선을 따라가며 상승하게 될 거야 운이 좋다면 네가 산 집이 더 올라갈 수도 있겠지. 그렇게 내가 가진돈과 감당 가능한 담보대출을 활용해서 내 집 마련을 하고 꾸준히 아파트 공부를 하면서 타이밍을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선배님, 제가 정리를 해볼게요.
1. 지금부터 내가 가진 자금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찾아본다. (6개월 간)
2.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실거주 집을 마련해서 거주 안정성을 확보한다.
3. 가격이 떨어지면 살면서 버티고, 올라가면 더 좋은 집으로 갈아 끼우기를 준비한다.
4. 지속적으로 송파집을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를 공부한다.


"이거 맞죠?"


"맞아. 나라면 그렇게 할거 같아. 하지만 이건 유매니저의 선택이야. 사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어.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고. 한번 잘 생각해 봐. 그럼 회사로 돌아가보자!"


김장 봉사활동한 지 벌써 3시간이 지났고 두 사람의 앞엔 100 포기의 김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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