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 < 분노 < 슬픔의 기록

광기의 국보 후기 3회차 (2)

by 윤석화




3) 슌과 키쿠오의 관계

농담인 듯 쏟아내는 진심이 있었다. 아버지의 대역을 자신이 아닌 키쿠오가 맡게 되었다는 것을 안 슌이 (함께 등나무 정령 작품을 처음 연습하던 그) 다리에서 키쿠오의 멱살을 잡으며 뱉어 낸 문장들.


장난처럼 무마시키며 넘어갔지만, 선명하게 남은 키쿠오 재킷의 구김들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와 이미 서로에게 남겨진 생채기 같은 것들을 너무 잘 표현했단 생각을 함.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슌에게 키쿠오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애써서 기억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좀 남았다.


첫마디가 “살아있어 다행이네”였던 게 좀... 북받쳤다. 그러면서 장난으로 이마를 때리려 손을 구부리는 일련의 동작들이 좀 감동적이었다.

모든 것을 팽개친 채 도망쳐버린 슌이 이제와 얼마나 겸연쩍고 창피할지, 미안할지 알면서 마치 어제까지 여전히 만나온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키쿠오가, 슌은 얼마나 고마웠을까?

반대로 키쿠오는 슌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그저 함께 자라난 그가 그리웠을까? 기다렸을까? 걱정했을까?

자신이 아버지의 대역을 꿰찬 장면을 보고 떠나간 그에게 미안함을 느꼈을까? 슌의 마음을 이해했을까?


저도 참 이상한게ㅎㅎ2회차까지만 해도 별로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감정들이 궁금하지 않았거든요?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주고 어떤 삶을 지탱하게 했는지, 서로의 역할 같은 의미랄까요?

극적인 순간에 분출된 마음들 빼고 평소에 서로에게 흐르는 감정들이 어떤 질감인지 온도는 어떤지,

이루고 있는 가장 주요한 색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졌어요.


음 제 느낌에 전반적으로 보랏빛이긴 합니다. 슌이 키쿠오에게 가진 질투랄지, 가질 수 없는 재능 같은 슬픔이 좀 많이 녹아, 블루가 더 센 보라.

또 키쿠오가 슌에게 가진 고마움과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피에 대한 분노, 억울함, 체념이 뒤섞인 레드가 좀 더 많은 보라.


근데 이게 피처럼 흐르는 액체 질감의 좀 온도가 높아 ‘따스하다’고 느낄 정도의 감정이 저에게는 남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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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은 연기 중에도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만큼, 또 평소에도 눈물을 쏟거나 화를 내거나 풀이 죽거나 아주 바쁘게 감정표현을 하곤 합니다.

(똑같은 도죠지 안에서도 키쿠오는 한 번도 웃지 않는데, 슌은 내내 웃음을 머금고 있어요..!)


그러다 이번에 마음이 이끌렸던 장면은, 슌과 키쿠오가 유일하게 함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었어요.

각자가 눈물을 흘리는 이윤 절대 변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을 서로가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요. 거참... 영화 잘 만들었네...

그런 상대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나를 좌절시키는 동시에 성장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계속 함께 해야 하는 걸까요? 아님 정신 건강을 위해 슌처럼 관계를 벗어던지는 게 현명한 걸까요?


일단 저는 그 사람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지, 제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가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아니다.... 아닌 거 같아요 이거 좀 허세다


뭣이 중헌디...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다..

전... 제가 안 다치는 게 제일 중한 거 같아요... 도망가자

그게 베스트다.



+또 극 중에서 키쿠오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혼자 무대를 준비하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슌은 혼자서 무대를 준비하는 장면이 묘사되지 않아요.


이것도 참 와닿는 연출이다 싶었던 게, 키쿠오는 무대 위의 삶과 무대를 준비하는 삶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몇 번의 일탈... 문신을 새기거나 사생아를 낳거나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러면서 여타의 취미생활도 없이 술도 마약도 안 한다...? 진짜 비현실이네... 하고 덕메와 얘기했거든요.ㅎㅎ정말 탈인간이다 하고요ㅎㅎ


거기에 반해, 슌은 무대 위의 삶-무대 밖의 삶을 잘 분리해서 살아내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게 예술에 대한 그의 진심을 판단하는 기준인 건 아니지만

(당뇨 유전 전력이 있는데? 재산이 몸인 사람이... 건강검진을 안 하고... 얼토당토않게 살다가... 다리를 절단하기에 이르는 일련의 상황이 말이 됩니까?

프로가 제정신이에요? 진짜 이마 짚으며... 머저리세요? 하는 지경에 이르긴 했음)

더 키쿠오와 비교되는 삶의 형태란 생각을 했습니다.



+슌과 키쿠오의 마지막 무대였던 소네자키 신주.

남은 한쪽 다리마저 잘 쓸 수 없게 된 슌이 고통을 느껴 쓰러지자, 키쿠오가 부축하러 가려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자 눈으로 만류하며 스스로 힘겹게 일어나 걸어오는 슌을 보며 키쿠오는 고개를 돌린다.

이 장면에 키쿠오의 진심이 많이 묻어났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무대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무대 위에 자신의 두 발로 서고 싶은 마음, 배우이기에 배우로 생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들.


무대 중에 단 한 번도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솔직한 본인의 감정을 드러낸 적 없는 키쿠오였는데 유일하게, 실제와 작품 속 감정이 혼재되어 나타난 거 같았다ㅠ죽여달라고 말하는 슌에게 북받친 키쿠오ㅠㅠ



3-2) 내가 진짜 이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

볼 때마다 눈이 뒤집힌 분노포인트ㅋㅋㅋㅋㅋㅋㅋㅋ도대체 내 새끼 왜 저렇게 옷 입혀요????????

아니 한집에서 함께 자란 세월이 얼만데.... 키쿠오 옷은 자의로 고르게 하는 건가요???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슌은 정말 봇쨩처럼 깔끔한 흰 셔츠에 베스트에, 정돈된 컬러의 재킷까지 입혀주면서,,,,

키쿠오는 무슨 아르누보패턴의 화려한 셔츠.... 아니 어느 시대 양아치냐고요 선생님들아...


ㅎㅎ그리고 아마 의도하셨겠지만 의도했다고 믿고 싶지만

한지로 선생님이 대역은 슌이 아니라 키쿠오다!! 발표하시는 병원 장면에서.. 키쿠오 내내 아름다우시다가, 왜 머리도 더벅이고 버건디 재킷도 팔부분이 작은지 딱 끼고 핏도 이상해서 세상 얼뜨기처럼 나오는데... 왜 그러신 건가요? 제발 알려주세요



4) 토이치(1)로, 한(半)야 예명

처음 즉흥적으로 한지로가 키쿠오의 예명을 지어줄 땐, 가볍게 재능에 대한 복선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곤 말았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언어였다.


슌의 예명도 한야라는 게요ㅠㅠㅠㅠ‘반’이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존재가 있어야만 온전히 “하나”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홀로 설 수 없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슌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예명이라고 이마를 쳤습니다.


반대로 키쿠오는 이미, 너무 혼자라, 하나라 그토록 외로운 삶이었나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찢어졌습니다만....


그러다 결국 마지막엔 한한콤비가 되는데, 그 한이 半반이라는 한자더라고요?

둘로 똑같이 나눈 것의 한 부분을 뜻하는 반


아버지의 대역을 맡아, 가짜였지만 진짜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친 키쿠오도

탄바야 가문의 진짜인 슌이 가부키에 있어선 늘 가짜 같았던 삶이었던 것처럼

예술에 대한 진심만큼은 언제나 진짜였던 두 사람의 삶을 잘 보여주는 예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언어가 삶을 규정하는 걸까 싶긴 하네요.



5) 가부키를 좋아해? 싫어해?

10년 만에 돌아온 슌을 가르치며 만기쿠가 말한다. 너 가부키가 싫고 싫어서 견딜 수 없지? 그걸로 됐다. 그럼에도 계속 무대에 설 수밖에 없는 숙명인 게야.


처음 봤을 땐, 싫어하는 티 냈다고 엄청 혼낼 줄 알았는데, 그래도 괜찮다 하는 게 좀 충격이었어요.

뭔가 당연히 내 업을 좋아하며 해야 하는 거 아님...? 싫어하는 걸 계속하는 삶은 너무 고통스러운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살아야 해..?(어리둥절)의 감정이 들었다면


2번째 봤을 땐, 너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어요. 가부키를 싫어하지만 언제든지 자신의 이름만으로 준비된 무대에 설 수 있는 슌스케와

가부키를 사랑하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는 키쿠오... 이런 거지 같은 세상이라니!!! 하며 분노했는데


3회차에 이르러서야, 키쿠오가 가부키를 좋아했던 게 아닐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어 정말 너무너무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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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딱 하나 가부키만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게 아니면

이게 없으면,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은 뭐였을까?

도대체 뭐가 남을까? 되물었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아연하며

꽈악 부여잡은 그것.


좋아하지 않아도 무대에 계속 서야만 하는 생....

그래요... 원작 소설 읽어볼게요... 보고서 다시 고민해 볼게요..




글자수를 읽기 편하게 3천대로 맞추려면... 쪼개서 올려야 하는데... 사진을 또 서치 하는 것도 제법 품이 들어 고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벌아저씨처럼 또 헐레벌떡 올게요..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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