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의 국보 3회차 후기 (3)
6) 결혼하자고 말하는 그가...
이건 덕메와 얘기를 나누다 깨달은 지점인데, 하루에에게 결혼하자고 말하는 키쿠오가 너무 안 멋지다는 거ㅋㅋㅋㅋㅋ
나: 아니 지금 멋지고 안 멋지고를 판단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얼마나 사무쳐요ㅜㅜ혼자서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키쿠오도 사람인데, 온기가 필요했을 수 있죠. 숨통하나쯤 그의 인생에 허락돼도 괜찮은 거 아닙니까악
덕메: 아니? 이제 막 열심히 해서 위로 올라가야 될 타이밍에 결혼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가지고! 현실에 안주해 주저앉으려는 그가 너무 멋지지 않아요! 나 같아도 거절함!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에가 너무 모순적인 거 아닌가요..? 제가 생각한 키쿠오와 하루에의 이별사유는 키쿠오가 너무 탈인간이고, 자신에게 기대질 않아서였는데? 이건 자신한테 손 내민 키쿠오를 완전히 예술세계로 보내버린 거잖아요?
아 자신과 결혼해도 이 사람은 끝끝내 예술의 편에 설 것이기에 영영 외로울 자신을 알아차렸던 건가?
그래서 계속 남자 키쿠오가 아닌 예술하는 키쿠오를 응원하고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그 둘을 분리할 수 있는 거긴 하고?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으나 생애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 키쿠오 인생의 동력은 결핍이었고, 슌의 동력은 지켜야 할 것 혹은 간절하게 이루고픈 무엇이 생겼을 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슌의 진짜 동력도 결핍이었을지 모르겠다.
그의 인생은 키쿠오를 만나기 전까지 결핍을 마주한 적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안온한 온실 속의 봇쨩이었으니까.
그러나 나이도 같고 자기보다 가부키를 늦게 시작한 키쿠오가 자신을 앞질렀다.
닿을 수 없는 지점까지 날아올랐다. 이에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최초이자 최후까지 손에 넣고 싶었던
키쿠오에겐 있으나, 자신에겐 없었던 “재능”이란 존재를 말이다.
그래서 꼬옥 물어보고 싶었다. 슌스케는 키쿠오를 만나게 된 걸 후회하고 있을까?
그가 아니었다면 영영 알지 못했을 패배감과 절망, 동시에 욕망을 깨우치게 한 키쿠오가 슌에겐 어떤 이름으로 남았을까?
슌에게 키쿠오는 무엇이었을까?
7)한지로는 자신의 죽음마저 작품이 되길 원했을까?
저는 구체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떠 올려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단연코 이젤 앞에서 죽어야지 했던 적은 없어요...
아니 마지막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가도 자리는 옮겨야죠....
정말 그림 앞에서 죽으면... 그려지고 있던 그 그림은 무슨 죄인가요..? 너무 ‘그림 그리는 나’에 도취된 삶 같아서 전... 싫어요...
하지만 공연 예술은 시각예술과 다르게 최후의 순간까지도 참 극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몸을 격하게 움직여서가 아니라 관객이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에)
새삼 타인이 필수적인 예술은 얼마나 힘든 걸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 속으로 침잠해야 하는 순간뿐 아니라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를 매 순간 고민하는 예술이라니.
자신과 오랜 호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각 예술과는 억만년의 우주가 있네요.
그렇기에 한지로는 죽는 순간까지도 ‘관객과 함께하는 작품’이길 의도했을까요?
마지막의 마지막마저 그는 배우이길 선택했던 걸까요?
너무나도 극적인 죽음이기에 3회차의 전, 정말로 그가 슈메이 도중 죽게 될 줄 몰랐을까?
음 뭔가 알고 있었다는 기분? 일부러? 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바랐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무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왜 막을 치나”, 하고 외치던 말도 그렇고 타이밍도 그렇고
배우에겐 무대 위에서의 죽음이 영광인 걸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인간 국보가 된 키쿠오의 첫 무대를 볼 때 심장이 콩닥거렸어요.
백로 아가씨는 이별의 슬픔에 빠진 백로가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이야기라고 하잖아요.
키쿠오의 삶을 빗대어 보여주려는 건가 싶어서, 엔딩에서 쓰러진 키쿠오가 죽었다고(1회차에선 생각했습니다...)
덧붙여 그래... 무대에서 죽을 수 있다면 뭐 호상이지, 역사에 남겠다야... 하고 (아직 덜 미치광이였던 1회차의 전 건조히 생각했습조)
스무살 첫 교양 수업 때, 각자의 묘비명을 고민해 오라던 과제가 생각나네요.
아니 앞길이 구만리인 새내기들한테 대뜸, 묘비명을 정하라니 너무하네~~ 하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던 거 같아요ㅎㅎ
그치만 조금 생각해 보면, 끝을 떠올리는 것만큼 시작과 어울리는 것도 없더라구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아야, 어떤 죽음이었다는 걸 기록할 수 있으니까요.
또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스스로가 규정하는 자신이 아주 다를 수도 있으니, 기회가 생길 때마다 끝을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의 오늘, 떠올린 묘비명은 무엇인가요?
8)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하나미치
처음 영화를 봤을 때부터 아니 저렇게 동선을 비효율적으로 만들 수가 있는 건가?
저 의상이랑 머리 진짜 무거울 것 같은데... 자기들이 무대에 서는 거 아니라고 막 만든 거 아니야???
무대 전에 집중력 다 깨지게 왜 저렇게 엄한 사람들 다 만나게끔!
한~~~ 참을 걸어야만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만든 거야 대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게 “하나미치”라고 불리는, 가부키 용어로 관객석을 가로질러 무대 중앙으로 가는 연결통로라고 합니다..
나루호도...
그러니까 무대가 커질수록 관객석도 자연히 거대 해질 테니, 저절로 무대까지 가는 하나미치도 억만광년이 되는 것...
음 자신이 서게 되는 무대 사이즈가 광활해질수록 혼자 감내하고 걸어내야 하는 길이 길어진단 게 참 좋네요.
그럴수록 자신을 더 가다듬고 오만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단련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아서요.
명상과 닮은 듯, 무대에 오르기 전 의상과의 호흡이나 마음을 찬찬히 살피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잘 들여다보며
관객의 발밑을 지나 가장 높은 곳으로 발돋움하는 길
심지어 하나(꽃)미치(길)란 이름이 저에겐 반어법처럼 느껴져서 많은 걸 생각하게 했어요.
꽃길은 아니잖아요... 숱한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선.... 어찌나 천리 가시밭길인지ㅎㅎ
꽃길이 이렇게 험악해도 되나요? 천장도 겁나 낮고 튀어나온 시설물도 많아 몸을 한껏 웅크려야 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걷지도 못하게 좁고!!(미야코 하나미치에서ㅎㅎ) 불편한 것 투성이인데.. 꽃길이라뇨.. 하며 세모눈이 되는 접니다..
그럼에도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예술이라 그런가, 무대 장치 하나까지 의미를 품고 있어 알면 알수록 흥미롭네요.
가부키 공부를 하면서 발견한 지점은 또 적어볼게요.
9) 필요한 건 오로지 자신의 몸뿐
온전히 자신의 몸만이, 예술에 필요한 재료 전부란게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요즘 ‘스테이지 파이터’라는 무용수들의 오디션을 2트째 보고 있어, 울림이 더 컸달까요?
즉각적인 감동과 아름다움을 주곤 영영 사라지는 예술과 지금 당장 눈물을 죽죽 흘리게 하진 않지만 결국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예술
여러분은 어떤 예술에 더 끌리시나요?
어린 시절 슈퍼스타K에 감화되었던 제가, ‘하... 나는 왜 저런 감동을 주는 예술을 하지 못할까?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 바로 눈앞에서 나 때문에 좍좍 우는 사람들(p)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목소리가 주는 힘에 매료되었던 거죠.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다른 그 악기의 힘.
형태는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해서 온도도 무게도 촉감마저 느껴지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만으로 위로받기도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담는 그릇이야 이미 바꿀 순 없지만, 뭘 담아 전하고 싶은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제 그릇이 투박해 보일진 몰라도 진심으로 고르고 골라 예쁜 것만 담았으니, 수상히 여기지 마시고
좋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ㅎ...
다시 국보이야기로 돌아가서
온나카타이기에, 평소 무대에서 쩌렁쩌렁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장면이 등장하진 않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와... 성량 무슨 일이야 하고 느낀 슈메이(성대한 작명의식) 씬..!
마이크 없이 도게자하며 감사인사를 전하는데.. 어머어머 진짜 광광 울리게 성량이 좋아서 제법 짜릿하게 좋았습니다..
피부를 때리는 발성이라니
사실 그림은, 최소한 그려질 어딘가와 그릴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장기잖아요?
그치만 이 공연예술자들은 진짜 그 몸하나만 있으면 감동도 울림도 줄 수 있다는 게 (아여전히 질투 나게 부럽고요?)
굉장히 원초적이지만 그래서 감동적인,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재료의 전부인 예술이기에, 무엇하나라도 잃게 된다면 완성할 수 없는 예술이란 것도 비극적이게 좋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완전함에 몰두하는 것이겠죠?
(갑자기... 블루자이언트가 생각나서.. 눈물 날 것 같아요...)
술에 취해도, 좁아터진 곳일지라도 전혀 굴하지 않고 춤을 완성해 낼 기량과 재능을 주세요.
키쿠오는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을 것 같아요ㅠㅠ
10) 방금 전까지 재료가 몸이 전부랬지만... 사실 또 하나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있습니다.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가부키는 절대 혼자선 할 수 없다는 것이죠.(그렇게 개인의 재능재능 노래를 불러놓고!! 갑자기 손바닥 뒤집죠? 껄껄)
좁게 보면, 가부키는 아주 완성도 높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공간은 물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하다못해 분장을 돕는 사람, 의상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입히는 것을 돕거나, 장면 전환에서 옷이 바꿀 때 필요한 일손, 소도구와 무대장치를 준비하는 사람들, 관객을 모으기 위해 홍보하고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까마득한 인원이 무대 하나를 위해 애쓰고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가문이란 울타리가 필수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뒷받침하고 있어야 하고, 그걸 기반으로 가족 세습이 이루어져야 더욱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거겠죠. 어쩌면 당연한 세상의 이치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쿠오는 정말 혼자서, 부단히도 싸워왔기 때문에 너무너무 장하고 기특한 것 같아요.
전생 같은 키쿠오의 봇쨩시절,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가부키 공연을 할 때, 어머니가 소년 키쿠오의 등을 하얗게 칠해주신 것 이후에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가 인간국보가 된 키쿠오의 등을 칠해주거든요ㅠㅠㅠ
그제서야 대접받게 된 거니 우리 키쿠오...??ㅜㅜ그전까진 천대받다가? 네이놈들ㅜㅜㅜ가만 안 둘 것이야 엉엉...ㅜㅜ
<장면해석>
11) 아니 택시가 이 길을 가는 게 맞아?
1-2트에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지만, 3트만에 이게 좀 이상하네? 불편하네~를 느끼게 된 지점이
슌의 어머니가 처음 소년 키쿠오를 택시에 태우고 극장 나니와좌로 향하는 길.
이게 좀 폭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사람이 많이 걷고 있는 길에 차를 몰고 가면서 잠깐의 기다림이나 지체 없이 클랙슨을 울려대는 게..... 맞아요?
지금 누가 이방인인데... 그토록 기고만장하게 비키라고 외치시는 건가요...?
애초에 인도인 거 아님??? 하며
탄바야 가문의 위치랄까 위협적일 정도로 강한 권위를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자꾸 이러실 거면 야쿠자 욕하지 마세요...(비슷한 거 같으니까... 소곤소곤)
12) 밥을 먹는다는 것
영화 불한당에서 현수가 단 한 컷도 음식을 먹는 장면이 안 나와요. 그게 바로 인간계의 음식을 먹지 않아 더럽혀지지 않은 천상계의 현수를 표현하고 있다는 설이 있었는데요. 참 그래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진짜 동물이구나 하고 절감하는 때가 아무리 울다가도 배고픔을 느끼는 순간이거든요.
그저 오롯하게 인간 따위구나를 깨닫게 만드는 즉물적인 지점인데
국보 속에서도 아버지는 괜찮으시냐며, 다급하게 병원 복도를 달리는 슌과 키쿠오의 모습을 묘사하다가 갑자기 게걸스럽게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줘요.
아니 밥을 이렇게 허겁지겁 먹는다고? 왜죠? 아버지 걱정하느라 밥을 걸렀나요? 뒤에 무슨 일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우걱우걱 먹는 장면을 이렇게 크로스한 이유가 뭘까...3회차 내내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슌스케의 집, 식탁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아가 카즈토요가 그곳에 앉아 맘마 먹는 순간까지 보여줌)
가족이란 게 진짜 식구(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인 거구나? 하고 감성적이 되었다가
아 그래... 우리가 같은 지붕 아래 함께 먹은 밥이 몇 낀데... 그래봤자 피가 안 섞였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까지 옴
+밥을 먹듯 시간을 삼켜서, 나가사키사투리가 아닌 간사이사투리를 쓰게 된 키쿠오
뭐랄까, 왠지 슌은 아무리 봇쨩이어도 사투리가 잘 붙는 느낌이거든요..?(그냥 제 느낌에요..)
근데 키쿠오는 간사이사투리가 영 안 어울리고, 이질적으로 자꾸미끄러지는 듯 툭툭 뱉는 게 감독님의 의도 같기도 하고요?
아무리... 키쿠오를 요상한 옷으로 덮어놓고 은폐엄폐하려 해도.... 진정한 봇쨩은 우리 키쿠오인 것이야...
p.s
썼던 후기 중에 가장... 맥락이 왔다 갔다 두서없다고 느끼셨다면
정답입니다.
제가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최대한 일주일 한편은 올릴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디오스